자동차 배터리 산업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 있을까요. LG화학,삼성SDI 등 국내 업체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글로벌 기업들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차량용 배터리 개발업체인 볼로레(Bollore)그룹은 얼마 전 시속 130㎞,한 번 충전으로 250㎞를 달릴 수 있는 고성능 배터리를 선보였습니다. 미국의 플루이딕 에너지사는 리튬 배터리보다 출력은 11배나 강하면서 가격은 3분의 1 수준인 배터리를 조만간 내놓을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고요.

미국,중국 외에 전기차 지원책을 내놓는 국가들도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시리아는 수도 다마스쿠스의 옛 시가지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반 차량의 진입을 금지하고 전기차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골프 카트 수준이긴 하지만 고대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교통 체증도 해결하기엔 전기차가 제격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벨기에엔 작년 12월 첫 번째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됐습니다. 두 번째 충전소는 벨기에 중심부 맥도날드 매장에 설치한다는대요. 앞으로 맥도날드는 신규 매장에 모두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기로 했답니다. 프랑스는 공공차량의 10%를 무조건 전기차로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 전역에 10만개의 충전소를 설치하겠다는 복안도 내놨습니다. 독일 역시 2020년까지 100만대의 전기차를 보유하겠다는 전략을 내놓기도 했죠.

대만,홍콩에 부는 전기차 바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만 정부는 앞으로 6년 안에 전기자동차 6만5000대 판매,생산액 2000억대만달러 달성을 목표로 '전기자동차 발전방안'을 추진할 태세입니다. 홍콩에선 작년 10월 홍콩 이공대와 자동차업체가 공동 개발한 'Cv.2'라는 전기차가 9만7000홍콩달러에 팔렸습니다. 조만간 에어컨을 새로 장착한 신모델도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난 11일 개막한 디트로이트 모터쇼도 전기차의 향연 그 자체입니다. 22년 역사상 처음으로 '일렉트릭 애비뉴(Electric Avenue)'라는 전기차 전용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여기서 선보인 차량들의 성능은 전기차 시대가 멀지 않았음을 짐작케 했습니다. 순수 전기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아우디의 'e-트론'은 정지 상태에서 5.9초 만에 시속 100㎞까지 도달하고,최고속도가 시속 200㎞를 넘어선다고 합니다.

100여년을 풍미한 내연 엔진의 시대가 지나고 모든 '모빌리티(mobility · 이동)'의 중심에 전기가 있을 것이란 전망은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합니다. 하지만 '언제 전기차 시대가 본격 도래할 것인가'에 관한 논란은 여전합니다. '예상보다 빠르다'는 쪽과 '아직은 신기루일 뿐이다'는 의견이 대립하는 형국인데요.

작년 12월 자동차공학회가 주최한 워크숍에서 현대자동차는 "전기차 시대는 203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며 정부의 전기차 진흥책을 정면으로 비판,이후 서로 진의를 파악하느라 한동안 떠들썩했던 모양입니다. 정부,기업 둘 중에 누구 말이 맞을지는 나중에야 판명 날 일이겠지만,빠른 준비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소비지인 미국과 중국이 전기차에 '올인'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동차 산업은 뿌리째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전기차를 향한 글로벌 자동차 '시계'는 지금도 '재깍재깍' 움직이고 있습니다.

산업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