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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론] 지진 대비 法만으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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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적인 적용으론 피해 막지못해
    설계·건설에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자연재난이 한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최근 아이티 지진은 비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래 전 손자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했으나 그 가르침이 아이티에서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지난 12일 발생한 아이티 대지진은 예상하지 못했던 재난이 아니다. 아이티 전체가 활성지진단층계로 에워싸여 있다. 이번 지진을 일으킨 단층계인 '엔리키요 플랜틴 가든 단층지대'에서는 연간 7㎜의 단층변위가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있었으며 1751년,1770년,1860년에 강진이 이 단층계에서 발생했다. 특히 1751년과 1770년 지진은 포르토프랭스에 큰 피해를 줬으며 그 결과로 목조건물만 신축이 허가됐다고 한다. 또한 지진학자들은 1980년께부터 이 단층에서 대지진의 위험이 증가하고 있음을 인지했고 2008년에는 규모 7.2의 지진이 임박했다는 경고까지 아이티 정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 세대에 지진의 참상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아이티 통치자들은 예고된 잠재적 위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거나 비록 지진위험을 통보받고서도 국가의 능력이 태부족해 미처 대비를 할 틈도,여유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례는 자연재해에 대해서는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과학지식이 실제 대비책으로 실현돼야만 가치가 있으며,자연은 인간의 무지와 태만에 대해서는 엄정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아이티는 장차 국가로서의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기에는 수년 아니 십 수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과 건설기술,경제력 및 국가의 의지는 사실 아이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티와 비교해서 지진의 위험이 높지는 않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그만큼 지진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만 가고 있다. 생산시설,교통 및 물류이동 시설,통신시설,라이프라인시설,에너지 공급시설 등이 복잡해지고 이 시설에 대한 경제활동의 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지진재해는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가져올 수 있다.

    지진으로부터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고도로 산업화된 국가에서는 산업경제활동에 대한 파급효과와 정상적인 기능으로 회복하는 기간을 최소화하는 것도 갈수록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지진대책도 이러한 방향으로 한층 더 진화하고 발전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진재해대책법을 제정해 2009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매우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국가내진성능 목표의 설정,지진과 해일 관측 시스템 운영,활성단층 조사,지진위험도지도의 작성 및 주기적 개정,29종 이상의 법정시설에 대한 내진설계 의무화와 내진보강계획의 수립 및 추진,신속한 지진대응체계의 구축,교육과 훈련, 내진 기술 연구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대책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진대책법의 시행은 대비의 시작일 뿐이다. 실제 위기상황에서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 보장되어야 대책으로서 가치가 있다. 내진설계가 적용 안된 많은 기존 건물들,특히 초 · 중 · 고교 건물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므로 이에 대한 단계적 대책이 요구된다. 현 세대가 지진을 겪지 않고, 아니 몇 세대가 지나더라도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법의 요구사항을 형식적으로 따르기만 한다면 아이티와 유사한 어려움에 언제라도 봉착할 수 있다. 법의 취지와 지식과 기술을 실제 계획과 설계와 건설에 잘 구현시켜야 비로소 지진의 징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김재관 <서울대 교수·구조공학/지진공학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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