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함·비판·야유…그래도 눈빛이 살아있는 '괴짜 석학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하버드 대학의 학자들
이스라엘 셰플러 지음 | 김영건 외 옮김 | 민음사 | 360쪽 | 1만8000원
이스라엘 셰플러 지음 | 김영건 외 옮김 | 민음사 | 360쪽 | 1만8000원
프래그머티즘의 창시자 찰스 퍼스(1839~1914)의 실재론을 계승한 모리스 코언(1880~1947)은 스승처럼 박학다식한 걸로 유명했다. 뉴욕시립대 교수 시절,그는 동료 교수들의 월례 모임에서 화제가 무엇이든 항상 최종 발언으로 결론을 내려 부러움과 함께 미움을 샀다.
화가 난 동료 교수들이 그의 기를 꺾기 위해 미리 각본을 짰다. '고대 중국 도자기'를 다음 모임의 주제로 정한 후 각자 전문 분야에 맞게 의견을 준비했던 것.화학과 교수는 청자의 화학성분에 대해,예술학과 교수는 청자의 양식에 대해,언어학과 교수는 고대 중국 도자기에 새겨진 문자의 언어적 특징에 대해 발표했다.
그런 식으로 모든 교수들이 발표할 동안 코언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의기양양해진 동료 교수들이 코언에게 코멘트를 요청하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있는 내 글을 읽었다니 기쁩니다. 그러나 그것을 쓴 후 내 의견은 변했습니다. "
《하버드 대학의 학자들》은 1952년부터 2003년까지 반세기 이상 하버드대 철학과와 교육대학원에서 철학을 가르친 저자가 하버드와 스탠퍼드 · 시카고 · 런던대 등에서 만난 수많은 저명 학자들의 면모와 학회의 분위기,학자들 간의 교류에 얽힌 이야기 등에 대해 들려주는 책이다.
가령 존 듀이(1859~1952)와 코언은 모두 퍼스의 과학적 방법론을 옹호했지만 갈 길은 달랐다. 듀이는 퍼스의 실용주의를,코언은 실재론을 물려받았다. 두 사람은 가르치는 스타일도 달랐다. 듀이는 전체 방향만 염두에 둔 채 강의하는 동안 하나의 논증을 전개시켜 나가곤 했다. 이에 비해 코언은 기존 견해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함께 신랄하고 비판적인 태도로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코언의 제자이자 '컬럼비아의 현자'로 유명했던 어니스트 네이글은 신사적인 논리학자였다. 교실에서의 비판적 분석은 예리했지만 학생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서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으면 결코 비판하지 않았으며 늘 정중했다. 또 네이글과 함께 저자의 지도교수였던 시드니 훅은 철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수학 · 자연과학 · 사회과학 · 역사 · 정치 · 문학 ·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분석적 사유를 적용하는 기반을 물려줬다고 저자는 기억한다.
펜실베이니아대의 넬슨 굿맨은 위대한 철학자들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도록 자극했고,하버드대의 해리 울프슨은 매일 교수클럽의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도서관에 가장 일찍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버드대에 공대가 없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코넌트 보고서'로 미국의 교육개혁을 제창한 제임스 코넌트가 하버드대 총장이 됐을 때 그는 공대와 교육대를 없애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MIT를 따라갈 수 없는 공대는 없앴지만 교육학의 중요성 때문에 교육대는 오히려 강화했다.
저자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칼 포퍼의 강연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포퍼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그의 추종자들은 거침없이 야유를 퍼부었다. 포퍼 또한 비판자를 적으로 간주했다. 경악한 저자의 반응은 이랬다. "존경받아 마땅한 포퍼의 이론과 달리 완전히 그의 세미나는 '닫힌 사회'였다. "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화가 난 동료 교수들이 그의 기를 꺾기 위해 미리 각본을 짰다. '고대 중국 도자기'를 다음 모임의 주제로 정한 후 각자 전문 분야에 맞게 의견을 준비했던 것.화학과 교수는 청자의 화학성분에 대해,예술학과 교수는 청자의 양식에 대해,언어학과 교수는 고대 중국 도자기에 새겨진 문자의 언어적 특징에 대해 발표했다.
그런 식으로 모든 교수들이 발표할 동안 코언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의기양양해진 동료 교수들이 코언에게 코멘트를 요청하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있는 내 글을 읽었다니 기쁩니다. 그러나 그것을 쓴 후 내 의견은 변했습니다. "
《하버드 대학의 학자들》은 1952년부터 2003년까지 반세기 이상 하버드대 철학과와 교육대학원에서 철학을 가르친 저자가 하버드와 스탠퍼드 · 시카고 · 런던대 등에서 만난 수많은 저명 학자들의 면모와 학회의 분위기,학자들 간의 교류에 얽힌 이야기 등에 대해 들려주는 책이다.
가령 존 듀이(1859~1952)와 코언은 모두 퍼스의 과학적 방법론을 옹호했지만 갈 길은 달랐다. 듀이는 퍼스의 실용주의를,코언은 실재론을 물려받았다. 두 사람은 가르치는 스타일도 달랐다. 듀이는 전체 방향만 염두에 둔 채 강의하는 동안 하나의 논증을 전개시켜 나가곤 했다. 이에 비해 코언은 기존 견해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함께 신랄하고 비판적인 태도로 학생들을 훈련시켰다.
코언의 제자이자 '컬럼비아의 현자'로 유명했던 어니스트 네이글은 신사적인 논리학자였다. 교실에서의 비판적 분석은 예리했지만 학생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서는 의미가 명확하지 않으면 결코 비판하지 않았으며 늘 정중했다. 또 네이글과 함께 저자의 지도교수였던 시드니 훅은 철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수학 · 자연과학 · 사회과학 · 역사 · 정치 · 문학 ·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분석적 사유를 적용하는 기반을 물려줬다고 저자는 기억한다.
펜실베이니아대의 넬슨 굿맨은 위대한 철학자들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학생들이 스스로 탐구하도록 자극했고,하버드대의 해리 울프슨은 매일 교수클럽의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도서관에 가장 일찍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오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버드대에 공대가 없는 이유도 설명해준다. '코넌트 보고서'로 미국의 교육개혁을 제창한 제임스 코넌트가 하버드대 총장이 됐을 때 그는 공대와 교육대를 없애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MIT를 따라갈 수 없는 공대는 없앴지만 교육학의 중요성 때문에 교육대는 오히려 강화했다.
저자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칼 포퍼의 강연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포퍼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그의 추종자들은 거침없이 야유를 퍼부었다. 포퍼 또한 비판자를 적으로 간주했다. 경악한 저자의 반응은 이랬다. "존경받아 마땅한 포퍼의 이론과 달리 완전히 그의 세미나는 '닫힌 사회'였다. "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