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돈이 돌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완화되면서 자금이 조금씩 기업과 가계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위기가 진정되면서 자금흐름이 정상화되는 과정이어서 통화팽창에 따른 부작용을 거론할 단계가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3분기 통화유통속도가 0.710으로 파악돼 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21일 밝혔다.

통화유통속도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07년 4분기엔 0.808을 기록했다. 이후 지속적으로 낮아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직후인 2008년 4분기엔 0.704,지난해 1분기엔 0.687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한은이 정책금리(기준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대거 공급하면서 작년 2분기엔 0.702, 3분기엔 0.710 등으로 높아졌다. 김명기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통화유통속도가 다시 높아지고 있는 것은 신용경색이 완화되면서 금융시장에 풀렸던 자금이 실물 쪽으로 조금씩 흘러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한은의 본원통화를 기반으로 어느 정도의 통화량을 만들어냈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승수 역시 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통화승수는 광의통화(M2,말잔)를 본원통화(평잔)로 나눠 계산하는데 지난해 11월엔 25.6배였다. 통화승수는 2008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27배를 웃돌았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해 3월엔 22배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상승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은에선 통화유통속도 등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정상 단계에 완전 진입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경제가 정상상태였던 2007년의 통화유통속도가 0.8을 웃돌았지만 지금은 이 수준에 턱없이 모자란다. 최소한 0.8 근처에는 가야 부작용을 걱정할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통화승수는 정상 수준에 근접하긴 했지만 이는 은행 간 거래 등이 늘어 실제 기업대출이 많이 확대돼 통화가 실물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는지는 시간여유를 두고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한은 관계자는 전했다.

민간 전문가들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통화팽창에 따른 과열이나 물가 및 자산가격 상승 등의 부작용을 막는 금리인상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내고 있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 연구위원은 "지금은 정상화 과정이기 때문에 점진적인 유동성 회수는 필요하지만 당장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 출구전략 시기가 임박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과 현대경제연구원도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은 빨라야 상반기 말,늦으면 3분기께가 적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

◆통화유통속도=연간으로 환산한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통화량 지표인 광의통화(M2,평잔)로 나눈 지표.통화가 부가가치 생산에 활용된 빈도수를 뜻한다. 통화유통속도는 절대적인 수치보다 추세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