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드라마 왕국'으로 부상했다. 올 들어 월화,수목,주말,주중 드라마가 모두 경쟁사 프로그램을 압도하고 있는 것.KBS 측은 "1990년대 초 SBS 출범으로 지상파 3사 체제가 정립된 이래 한 방송사가 매일 주요 시간대 드라마 경쟁에서 앞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반색하고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S미디어에 따르면 KBS 2TV가 올초부터 방영한 월화극 '공부의 신'(오후 9시55분)은 지난 19일 시청률 25.8%를 기록하며 10% 초반대인 SBS '제중원'과 MBC '파스타'등을 압도했다. 2TV 수목극 '추노'(오후 9시55분)는 21일 시청률 33.7%로 SB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MBC'히어로' 등을 멀찍이 따돌렸다.

또한 2TV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방송 중인 스타 작가 문영남씨의 주말극 '수상한 삼형제'(오후 7시55분)는 지난 17일 시청률 40.2%를 기록,새해 들어 '해피선데이-1박2일'에 이어 두 번째로 40% 고지를 넘어섰다. 1TV의 주중 드라마(월~금 오후 8시25분) '다함께 차차차'도 평균 30%대를 웃돌며 고공행진 중이다.

이응진 KBS 드라마국장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프로그램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며 "순수 우리 것(사극'추노')뿐 아니라 외국 것('공부의 신')도 우리 것으로 만들어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공부의 신'은 일본 만화 '꼴찌,도쿄대 가다'와 드라마 '드래건 사쿠라'를 리메이크한 학원물.지난해 '꽃보다 남자' 이후 재등장한 일본 만화 원작물이다. 국내 방송 드라마 사상 공부를 소재로 다룬 것은 처음.없어질 위기에 처한 '병문고'에 변호사(김수로)가 구조조정 책임자로 등장해 문제아들을 모아 괴짜 교사들과 함께 일류 '천하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을 그렸다.

제작진은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가 드라마 주제라고 말한다. 내용적으로는 만화처럼 희화화된 캐릭터와 독특한 소재가 무기다. '선덕여왕'에서 김춘추로 등장했던 유승호와 영화'괴물'에서 괴물에게 잡아 먹힌 여중생 역의 고아성 등이 개성있는 학생 연기를 해낸다. 전설의 수학선생 역을 맡은 변희봉,새로운 영어교습법을 선보이는 이병준 등은 겉모습만으로도 만화적인 인물 같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독특한 공부 방법도 인기 만점이다.

가령 영어 학습법으로 노래를 부르며 영어와 친숙해지거나 기본 문장 100개를 마스터해 작문 시험에 임하도록 이끄는 비법 등은 일반인에게도 괜찮은 학습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방학을 맞은 학생과 부모들이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있다.

'추노'는 모처럼 등장한 가벼운 느낌의 사극으로 평가된다. 노비를 추격하는 대목은 박진감 넘치는 액션으로 처리했고 나머지는 저잣거리의 유머와 음담패설로 이끌어 간다. 한마디로 왕조 중심의 무거운 사극에서 탈피해 신선한 화면을 제공한다. 이는 영화계 인재를 도입한 게 주효했다. '7급 공무원'의 천성일 작가와 KBS 곽정환 PD가 힘을 합친 것.

지난해 말 드라마 '아이리스'에 영화 '바람의 파이터'의 양윤호 감독을 기용한 데 이어 연속 홈런을 쳤다. 두 드라마는 번뜩이는 콘텐츠와 역량을 다른 영역에서 찾아낸 드라마 제작진의 개가로 풀이된다.

KBS는 평일 저녁 시간과 주말 저녁 시간대를 '가족 드라마 타임'으로 특화한 전략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출생의 비밀,불륜과 기억상실 등 자극적인 설정으로 주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다함께 차차차'는 한날 한시에 과부가 된 동서지간 여인을 중심으로 가족 이야기를 풀어낸다. 기억을 잃고 다른 여자와 살았던 남편이 기억을 되찾은 뒤 본처에게 돌아갈 것인지 고민이 깊어진다. 또 기억상실 중 만난 부인과의 사이에 태어난 딸을 거두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욕심으로 가족 간 갈등이 깊어지면서 시청률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수상한 삼형제'는 장남만 싸고 도는 어머니,거짓말이 들통나는 첫째 며느리,불륜을 예고하는 둘째,아버지끼리 원수지간인 셋째 예비 며느리 등의 이야기가 얽히며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