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등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수출주인 IT주들이 오히려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코스피 지수 급락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 금융기관 규제에 따라 외국인이 위험자산인 주식 비중을 줄이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22일 원·달러 환율은 1150원대를 돌파하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날 오후 1시43분 현재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3.00원 오른 1150.10원을 기록중이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 급등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형 IT주들은 급락하며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코스피 전기전자업종이 2.45% 빠지고 있으며, 이 중 삼성전자가 2.47%, LG전자가 3.54%, LG디스플레이가 2.98% 떨어지고 있다.

환율과 IT주의 엇박자 현상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나타난 달러 강세 요인이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상업은행들의 투자행위를 규제하고, 상업은행의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투자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정경팔 외환선물 시장분석팀장은 "그 동안 미국 금융기관들이 초저금리인 달러를 빌려 고금리 통화에 투자했는데, 규제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안전자산 위주로 미리 포지션을 조정하고 있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날 원화는 약세를 보이는 반면 엔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안전자산 선호현상 때문인 것으로 풀이했다.

정 팀장은 "연초 원화가 초강세를 보인 것은 역외세력들이 엔화를 팔고 원화를 샀기 때문이었는데, 이날은 달러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엔화를 사고 반대로 원화는 파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초 원·엔 환율은 100엔당 1208원까지 내려갔었지만, 이날은 개장을 1250원에서 시작해 1280원대까지 급등하고 있다.

금융기관 규제안이 의회통과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당분간 달러 강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성재만 동양종금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의 달러 약세 요인이 크게 완화된 상태"라며 "올해 경기회복과 함께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커 달러가 쉽게 약세로 돌아설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출주의 실적 개선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수출 중심의 국내 IT기업들에게는 호재다.

하지만 당분간 환율 상승도 큰 약발이 먹힐 것 같지 않다. 주식에 대한 수급 불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 금융기관이 주식 비중을 줄이면서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강했던 IT주들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고유선 대우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환율만 놓고 보면 수출주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금융 전체적인 시각에서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가 높아진다는 것은 위험자산인 주식 비중을 축소한다는 얘기와 다름 없기 때문.

실제로 이날 외국인은 현·선물 시장에서 대량으로 매물을 쏟아내며 순매도로 돌아섰다.

고 이코노미스트는 "위험자산인 주식시장으로부터의 자금이 청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수급 측면에서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경닷컴 김다운 기자 k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