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의 죽음 후,그를 다룬 특집들에서 생전 인터뷰들을 접할 수 있었다. 쏟아진 질문들 중 가장 잔인해 보이는 것이 피부색에 관한 것이었다. 어린 마이클 잭슨의 초콜릿 색 검은 피부가 나이와 함께 탈색한 것처럼 점점 옅어졌을 뿐만 아니라,심지어 백인들보다 희고 투명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호기심을 넘어선 인신공격에 가까운 질문들,즉 피부성형을 몇 번이나 했느냐,왜 피부색을 바꾸려고 하느냐,흑인으로 태어난 것을 부인하느냐는 등으로 그를 집요하게 추궁하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대답은 거의 비슷했는데,피부성형을 한 적이 없으며,가족 중에 이런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 적이 있다고 했다. 기자들은 그의 대답에도 아랑곳 않고 '색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런데 마이클 잭슨 식의 피부현상은 백반증이라는 병 때문에 생기는 것임이 나중에 밝혀졌다. 흑갈색 색소인 멜라닌의 양에 의해 피부색이 결정되는데,마이클 잭슨은 멜라닌 세포의 파괴로 피부에 백색반점이 나타나는 후천적 탈색소성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백반증이 심해지면,피부가 점점 반투명 상태로 변해 몸안의 핏줄이 거의 다 보이고,그를 처음 본 사람은 속으로 엇! 소리를 지를 정도가 된다고 한다. 물론 기자들이 마이클 잭슨을 몰아붙일 당시에는 백반증이라는 병이 알려지기 이전이었다.

한편 재미교포 김은국씨의 첫 소설이자 영어소설인 '순교자(The martyred · 1964)'가 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미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고,10개 국어로 번역되었으며,우리나라에서도 세 출판사에 의해 차례로 번역 출간됐다.

이 소설은 6 · 25전쟁 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체포된 평양의 목사 14명 중 12명이 처형되고 2명만이 살아남은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이념과 종교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줄줄이 처형당하던 상황에서,두 명의 목사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한 명은 현장의 충격으로 미쳐버린 탓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나머지 한 명인 신 목사의 생존 비밀은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가 다른 목사들이나 하나님을 배반한 대가로 생명을 구한 것이라는 추측과 상상이 나돌면서,신도들까지 그를 '유다'로 매도하며 괴롭혔다.

그런데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진짜 이유가 나중에 제3자를 통해 밝혀지는데,12명의 목사들은 목숨을 구걸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부인했지만,신 목사만은 끝까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했던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당당한 신 목사만이 진짜 목사라고 여겼고,나머지는 가짜 목사라고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이 소설은 픽션만은 아니고 실화가 바탕이 돼 씌어진 것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도덕적이면서도 다층적인 시각으로 쓴 이 소설에 대해,당시 미국 뉴욕타임스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알베르 카뮈의 심리적 문학적 전통을 이어받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적고 있다. 김은국은 한국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1967년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과 김은국은 묘하게도 지난해 같은 6월 사망했다. 마이클 잭슨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흑인의 위상까지 높였음에도 불구하고,생전에 흑인 피부를 거부한다는 편견에 줄곧 시달리다 죽었다. 신 목사는 죽은 동료들을 순교자로 여기면서도 자신을 배반자로 여기는 사람들의 무지한 오해와 핍박을 기꺼이 감당했다. 눈에 보이는 사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사이의 괴리감이라니! 이념이나 사상뿐만 아니라,우리의 맹목적인 집단의식이 때로 한 개인의 진실을 끔찍하게 위협하거나 짓밟는 일이 있다. 새해에는 우리 주변에 그런 일이 적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