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경보시스템 시급"
15만여명의 사상자를 낸 아이티 강진을 계기로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언론이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이 있다. 국내 지진학 박사 1호인 김소구 한국지진연구소 소장(전 한양대 교수 · 68 · 사진)이다. 지난 20일 경기도 일산 연구소로 그를 찾아갔다. 개인적인 일로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해 짐을 꾸리던 그는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중국만큼 지진에 노출된 지역은 아니지만 지진 예보 시스템,인력 양성 등 관련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티 참사로 지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습니다.
"지진은 에너지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한 번 발생하면 대재앙으로 이어지죠.물론 징후가 나타나긴 하지만 불과 30~40초 만에 모든 건물을 파괴할 정도로 자연 재앙 중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피해를 줍니다. 그러다 보니 피할 방법이 없어 더 무섭죠."
▼일본은 잘 대처하지 않습니까.
"일본은 내진 설계와 조기 경보 시스템을 실용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조기 경보 시스템이 지진을 감지하면 달리던 신칸센을 자동으로 멈추게 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식이죠.하지만 이는 매우 소극적인 방법입니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은 날씨 예보처럼 지진을 예보할 수 있어야 하는데,땅 속에서 이뤄지는 메커니즘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예보 성공률이 아직은 30% 정도밖에 안돼요. 엄밀히 말하면 실패작입니다. "
▼내진 설계를 강화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나요.
"무조건 튼튼하게 짓는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리히터 규모 7.0에서 견딜 수 있게 내진 설계를 했다고 해서 안심하면 안 됩니다. 내진값이라는 게 각 나라의 토질,암질,탄성 등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해지는데,우리나라는 외국의 내진 설계값을 차용해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와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
▼조기 경보 시스템의 원리는 뭡니까.
"지진은 P파와 S파가 있는데,S파가 큰 피해를 줍니다. 다행히 P파가 20~30초 먼저 오기 때문에 이를 미리 탐지하고 가스,전력,기계설비 등의 작동을 자동 차단해 피해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이 예년보다 많은 60여 차례나 발생했습니다.
"유라시아판과 인도판 충돌 지역이 히말라야 쪽인데 그 여파가 중국에 미치고,환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하는 곳이 일본 열도입니다. 우리나라는 그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서울 한강에서 풀을 뜯어먹던 말이 지진에 놀라 달아났다는 기록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만큼 위험 지역은 아닙니다. "
▼영화 '해운대'에서처럼 쓰나미가 올 수도 있습니까.
"일본 홋카이도 서쪽 바다에서 지진이 일어날 경우 동해 북쪽의 강릉 묵호 울진 등에 쓰나미가 올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초대형은 아니고 선박 파손 정도의 규모입니다.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대형 쓰나미는 일본이 막아주기 때문에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이 미치지 않습니다. "
▼지진에 가장 취약한 곳은.
"서울과 수도권이 가장 취약합니다. 지난 200년 동안 큰 지진이 없던 '지진 정지기' 지역이에요. 이는 안전하다는 게 아니고 지진 에너지가 축적돼 있어 더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이티도 아주 오랫동안 지진이 없다가 터진 경우죠.수도권 중에서도 가장 약한 지역은 서울 강남입니다. 강남은 지질학적으로 보면 퇴적층으로 연약지반입니다. 특히 지하철 2호선 강남 쪽은 깊이가 5~10미터밖에 안 되는 데다 초고층 건물들이 많은 하중을 주고 있어 지진 발생시 큰 피해가 예상됩니다. "
▼강북지역은 어떤가요.
"덕수궁,시청,광화문을 비롯해 강북 도심은 암반지역이어서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선조들이 풍수지리를 보고 수도를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좋은 땅을 골랐어요. "
▼무엇보다 원자력발전소 입지 선정이 중요할 텐데.
"활성단층이 없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강원도 원주 쪽이 지진활동도 없고 암반으로 돼 있어 지질학상으로는 가장 안전한 지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우리나라 지진 예측 수준은.
"지진 예측 능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조기 경보 시스템도 안돼 있죠.우리나라에서 지진 관측망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년밖에 안 됐어요. 데이터 수집은 잘 돼 있는데 분석력이 매우 약해요. 특히 소프트웨어 분야가 취약하기 때문에 발전이 더뎌요. 미국 멕시코 터키 등에서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시험 운용하고 있고,아까 말했듯이 일본은 신칸센 등에 적용해 실용화 단계입니다. "
▼지진 대비가 안돼 있다는 말인지요.
"지진 발생 빈도가 적다 보니 안일한 경향이 있습니다. 스웨덴 핀란드 등 지진이 없는 나라도 국립지진연구소가 있고,심지어 북한도 1974년 설립했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습니다. 기상청,지질자원연구원,소방방재청,안전기술원,전력연구원,가스공사,수자원공사 등이 지진가속도계를 설치하는 등 나름의 목적에 맞게 대비해 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나라의 위상을 감안할 때 각 기관의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질 높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국가 연구기관이 필요합니다. 물론 지난해 자연재해대책법이 제정돼 소방방재청이 전국에 지진가속도계를 깔고 있긴 합니다만…."
▼우리나라 지진 전문가는 얼마나 되는지.
"지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고체지구물리학 박사급 인력은 20여명으로 빈약합니다. 그런데 지표면을 연구하는 지구물리학 전공자들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유사 전문가들이 지진 영역까지 맡아서 일하는 경우가 있어 유사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소 수출만 해도 그래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한 번 실수하면 끝 아닙니까. 원전을 지을 때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가장 먼저 따지는 게 내진 규정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현장에는 IAEA 전문가들이 파견돼 있고요. 그런 중요한 현장에 유사 전문가가 투입된다면 큰일이겠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뭡니까.
"우리나라는 데이터는 많이 축적돼 있지만 데이터 분석과 소프트웨어 관련 전문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어야 예보 수준도 올라 갑니다. "
글=최규술/사진=김영우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