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팝아티스트 권기수씨는 '동구리'라는 캐릭터를 사각형의 캔버스에 안착시켰다. 서울 신사동 어반아트에서 3월10일까지 개인전을 갖는 권씨는 대중문화와 순수예술의 경계를 아우르고 있다는 평가다.

5~6월 카이스갤러리에서 작품전을 여는 최소영씨는 '청바지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낡은 청바지천을 자르거나 꿰매 부산의 부둣가와 서민 동네를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런 참신성을 인정받아 지난 6년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그의 작품 17점이 모두 팔려 낙찰률 100%(낙찰총액 1400만홍콩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 화단에서 특정 소재나 이미지를 활용한 작품만 꾸준히 제작 · 전시하면서 자신만의 고유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작가가 늘고 있다. '설악산'을 작품의 대표 브랜드로 활용하며 전시를 준비 중인 원로작가 김종학씨나 '물방울' 작가 김창열씨,'보리밭' 이숙자씨,'장미' 황염수 · 김재학씨,'골프' 이왈종씨,'지리산' 여운씨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고유 브랜드를 형성한 원로 · 중진 작가들.

이들 외에 김정수(진달래) 윤병락(사과) 장이규(소나무) 이재삼(대나무) 박성민(얼음) 황주리(식물학) 이정웅(붓) 황재형(탄광) 정종미(종이부인) 사석원(당나귀) 안성하(사탕) 김준(문신) 등 30~50대 작가 30여명도 최근 특화된 소재를 집중적으로 내세우며 고유 브랜드 알리기 대열에 가세했다.

화가들이 고유브랜드에 매달리는 건 차별화된 소재나 이미지로 예술 세계의 '원형'을 추구하는 한편 특화된 그림을 통해 국내외 미술 애호가들에게 작품의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화가들의 특화된 브랜드가 국내외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새해 들어 관련 전시회도 줄을 잇고 있다. 서울 관훈동 노화랑은 오는 3월 골프화가로 유명한 중견 작가 이왈종씨의 골프 소품전을 연다. 골프 실력이 싱글 수준인 그는 1990년 추계예술대 교수직을 버리고 21년째 제주 서귀포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골프에는 자질구레한 감정 대신 오직 덩어리로 느낄 수 있는 야생의 힘이 있다"며 골프그림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민족미술인협회장을 지낸 여운씨에게는 최근 '지리산 화가'라는 애칭이 붙었다. 2000년 이후 지리산을 작품 소재로 꾸준히 삼아온 덕분이다. 실제 그에게 지리산은 미학적 감성을 풍성하게 만드는 '황금어장'이면서 수행의 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지리산' 작품전을 연 데 이어 다음 달 25일부터 한 달간 미국 워싱턴 워크갤러리에서 열리는 '동서양의 만남'전에 초대된다. 여씨는 그간 국내에서 '지리산' 작품이 어느 정도 시장성을 검증받은 만큼 미국 ·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마케팅 브랜드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설악산'의 작가 김종학씨는 이달 하반기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삶의 이야기를 식물에 담아내는 '식물학 작가' 황주리씨는 오는 5월 갤러리 현대 강남점에서,강원도 태백의 탄광촌을 그리는 황재형씨는 이달 가나아트갤러리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고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미술평론가 정준모씨(국민대 교수)는 "요즘은 입는 것,먹는 것,자는 곳 하나 하나가 모두 '브랜드'가 되는 시대여서 화가들도 특정 소재나 재료를 발굴해 이를 꾸준히 그리며 자신의 고유 브랜드로 육성하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