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상역 수출 9년새 7배…한세실업도 5배 성장
( ODM : 제조자개발생산 )
#사례 2.세계적인 여성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은 1년에 두 번 정기적으로 미국 뉴욕에서 한세실업과 디자인 회의를 갖는다. 계절별 트렌드와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춘 속옷 디자인을 논의하는 자리다. 세계 100여개국에 수출하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속옷 중 상당 부분은 한세실업 디자이너들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한국 패션의류 수출업체들이 단순 임가공 형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에서 벗어나 제조자개발생산(ODM ·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방식으로 생산체제를 속속 전환,글로벌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OEM 체제에서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대만 홍콩 등 후발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을 받았지만,디자인 역량이 뒷받침돼야 하는 ODM 거래가 늘어나면서 입지를 다시 강화한 결과다.
2000년 총 수출 규모가 1억2600만달러였던 세아상역은 타깃 갭 올드네이비 홀리스터 등 글로벌 패션 유통 브랜드에 대한 공급 확대에 힘입어 지난해 수출이 9억2000만달러를 기록,9년 새 7.3배나 늘어나면서 세계 최대 패션의류 수출업체 자리를 굳혔다.
이 회사는 서울과 뉴욕에서 디자인센터를 운영하는 한편 베트남 과테말라 등 7개국에서 21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뉴욕 디자인센터 외에 7개 해외법인을 운영 중인 한세실업도 이 기간 수출 규모가 1억2400만달러에서 6억5000만달러로 커지며 글로벌 패션업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2001년 업계 최초로 자체 디자인팀을 구성한 세아상역은 당시 이름조차 생소했던 TD(Technical Design♥디자인컨셉트 개발)팀과 원단 소싱 전담팀을 설립하며 경쟁력을 키워 왔다. 이런 과감한 투자가 경쟁 업체를 따돌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ODM 생산 초기에는 디자이너들이 직접 의류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미국 전역을 돌며 주문을 따내기도 했다.
ODM은 고객사가 요구한 디자인대로 상품을 생산하는 OEM과 달리 자체 개발한 디자인을 고객사에 역(逆)제안하고 제품을 생산한다. 고정 투자비를 줄이려는 세계 유명 의류 브랜드 업체들과 영업마진을 높이려는 아웃소싱 업체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이 방식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타깃은 매년 경영계획을 수립하는 단계부터 ODM 업체들을 참여시켜 의류 부문의 매출 목표와 상품 컨셉트를 결정할 정도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ODM 제품의 또 다른 강점은 해당 기업이 디자인한 의류에 대해 지식재산권과 독점 생산권을 확보,다른 업체와의 경쟁에 따른 가격 하락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덕분에 세아상역과 한세실업은 국내 전체 대기업 제조업 평균(6.58%ㆍ2008년 기준)보다 월등히 높은 12%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세아상역은 원가절감을 위해 올해 말까지 1억6000만달러를 투자,인도네시아에 원단 생산 공장을 신규 설립하기로 했다. 국내에서 공급하던 원단 물량(40%)은 그대로 유지하고 중국에서 받던 나머지 원단 물량을 자체 조달,수익구조를 더욱 다졌다.
하명근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부회장은 "세계적인 의류 메이커에 새로운 디자인 샘플을 제안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 의류 수출기업들의 기술력이 발전했다"며 "영업마진이 큰 ODM 제품 개발을 통해 국내 의류 수출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