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비운사이 정변 생길라"…아르헨 대통령 訪中 전격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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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데스 "부통령이 정부 전복 음모"
외채 상환갈등이 정치 불안으로 번져
외채 상환갈등이 정치 불안으로 번져
아르헨티나 민 · 관 대표단이 25일 나흘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하지만 대표단을 이끌 것이라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9일 마자오쉬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2007년 12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다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외교 결례까지 무릅쓰며 국빈 방문 일정을 전격 취소한 까닭은 자국 내 정정 불안 때문이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자리를 비울 동안 훌리오 코보스 부통령이 월권을 할까 우려된다"며 "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현 정부를 전복시킬 어두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보스 부통령은 야당 소속으로 상원의장을 겸하고 있다.
◆외채 상환 놓고 여야 충돌
최근의 아르헨 정정 불안은 중앙은행 보유 외환을 전용해 외채를 갚으라는 대통령의 요구를 마르틴 레드라도 중앙은행 총재가 거절하면서 촉발됐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외채상환기금 설치를 위해 481억달러의 중앙은행 보유 외환 가운데 66억달러가량을 정부에 넘기도록 중앙은행에 지시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올해 상환해야 할 130억달러의 외채 가운데 20억~70억달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레드라도 총재가 이를 거부하자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총재 교체를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레드라도 총재는 즉각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해임 조치를 무효화하고 외채상환기금 설치도 의회의 승인을 받을 때까지 유보하도록 판결했다. 레드라도 총재는 업무에 복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부는 경찰을 배치,저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코보스 부통령은 보유 외환의 전용은 의회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코보스 부통령은 사실상 야당의 지도자"라며 "레드라도 총재와 농민들 그리고 미디어 재벌들과 함께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아르헨티나는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했던 2001년과 같은 위기 상황에 또다시 빠져서는 안 된다"며 외채상환기금 설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1020억달러의 외채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국제시장에서 채권 발행을 못해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이 야권의 손을 들어주면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의회에서 힘든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됐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지난해 6월 말 총선 결과에 따라 여소야대로 짜여진 상태다.
◆좌충우돌 아르헨 대통령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당시 55%에서 최근 20%로 추락한 상태다. 전임자인 남편(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직에 오를 때만 해도 '제2의 에비타'로 추앙받았지만 갈수록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2008년 3월 인플레 억제를 위해 농 · 축산물 수출세 인상안을 제시하면서 농업계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농민들의 파업이 줄을 이었고 이는 식료품 공급 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물가는 오히려 더 뛰었다. 중산층 서민들이 2001년 경제위기 이후 처음으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일이 빚어졌고 이는 지난해 6월 총선에서의 참패로 나타났다. 여권이 30% 득표율에 머물며 6년 만에 여소야대 의회가 구성된 것이다. 이달 초에도 아르헨티나 4대 농업단체들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 농업정책 방향 전환을 촉구하며 새로운 파업을 경고하고 나섰다.
현 정부에 대한 재계의 시선도 곱지 않다. 지난해 7월 아르헨티나 최대 경제단체 가운데 하나인 경제인연합회(AEA)는 인위적인 인플레 억제 대책 중단과 경제정책의 투명성 제고 필요성 등을 담은 문건을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1990년대에 민영화한 항공사와 공공시설 및 민간연금 펀드를 재국유화하고 임금 인상 압력을 가하면서 재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지난해 12월 산업생산은 전년 동기보다 10.4%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브라질 경기 호조로 자동차 수출이 늘면서 자동차 생산이 거의 두 배로 증가한 덕분이다. 하지만 정정 불안이 깊어지면서 경기회복세가 지속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외채 상환 놓고 여야 충돌
최근의 아르헨 정정 불안은 중앙은행 보유 외환을 전용해 외채를 갚으라는 대통령의 요구를 마르틴 레드라도 중앙은행 총재가 거절하면서 촉발됐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외채상환기금 설치를 위해 481억달러의 중앙은행 보유 외환 가운데 66억달러가량을 정부에 넘기도록 중앙은행에 지시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올해 상환해야 할 130억달러의 외채 가운데 20억~70억달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레드라도 총재가 이를 거부하자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총재 교체를 전격 발표했다. 하지만 레드라도 총재는 즉각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해임 조치를 무효화하고 외채상환기금 설치도 의회의 승인을 받을 때까지 유보하도록 판결했다. 레드라도 총재는 업무에 복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부는 경찰을 배치,저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코보스 부통령은 보유 외환의 전용은 의회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코보스 부통령은 사실상 야당의 지도자"라며 "레드라도 총재와 농민들 그리고 미디어 재벌들과 함께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아르헨티나는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했던 2001년과 같은 위기 상황에 또다시 빠져서는 안 된다"며 외채상환기금 설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1020억달러의 외채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국제시장에서 채권 발행을 못해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이 야권의 손을 들어주면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의회에서 힘든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됐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지난해 6월 말 총선 결과에 따라 여소야대로 짜여진 상태다.
◆좌충우돌 아르헨 대통령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당시 55%에서 최근 20%로 추락한 상태다. 전임자인 남편(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직에 오를 때만 해도 '제2의 에비타'로 추앙받았지만 갈수록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2008년 3월 인플레 억제를 위해 농 · 축산물 수출세 인상안을 제시하면서 농업계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농민들의 파업이 줄을 이었고 이는 식료품 공급 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물가는 오히려 더 뛰었다. 중산층 서민들이 2001년 경제위기 이후 처음으로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일이 빚어졌고 이는 지난해 6월 총선에서의 참패로 나타났다. 여권이 30% 득표율에 머물며 6년 만에 여소야대 의회가 구성된 것이다. 이달 초에도 아르헨티나 4대 농업단체들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 농업정책 방향 전환을 촉구하며 새로운 파업을 경고하고 나섰다.
현 정부에 대한 재계의 시선도 곱지 않다. 지난해 7월 아르헨티나 최대 경제단체 가운데 하나인 경제인연합회(AEA)는 인위적인 인플레 억제 대책 중단과 경제정책의 투명성 제고 필요성 등을 담은 문건을 페르난데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1990년대에 민영화한 항공사와 공공시설 및 민간연금 펀드를 재국유화하고 임금 인상 압력을 가하면서 재계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지난해 12월 산업생산은 전년 동기보다 10.4% 증가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브라질 경기 호조로 자동차 수출이 늘면서 자동차 생산이 거의 두 배로 증가한 덕분이다. 하지만 정정 불안이 깊어지면서 경기회복세가 지속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