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젠한국 회장(62)이 국내 최대 도자기회사인 한국도자기로부터 독립한 때는 2005년 초.10년 동안 맡았던 대표이사 자리를 장손인 조카(큰 형인 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의 장남 김영신 사장)에게 넘긴 직후였다.

한국도자기 창업주 고(故) 김종호 회장의 4남인 김 회장은 국내 최초로 '본차이나'와 '슈퍼 스트롱(초강자기)'을 개발한 엔지니어 출신 CEO(최고경영자).그런 그에게 도자기 외에 다른 사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밑천은 한국도자기판매(젠한국의 전신)와 1991년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한국도자기 인도네시아 생산법인이었다. 당시 두 회사의 연 매출은 통틀어 180억원에 불과했다.

주변에선 우려를 쏟아냈다. "신생 업체가 한국도자기와 행남자기의 벽을 뚫을 수 있겠느냐"고.더구나 중저가 도자기를 마구 찍어내던 중국 및 베트남 업체 틈바구니에서 인도네시아 공장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걱정은 '기우'로 판명됐다. '홀로서기' 5년 만에 회사 덩치가 두세 배나 불어났기 때문이다. 올해 목표는 작년(약 500억원)보다 20%가량 늘어난 600억원.국내외 도자기시장이 수년째 정체 상태에 빠진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장세다. 그간 젠한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2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에 있는 젠한국 공장에서 만난 김 회장은 '과감한 투자'를 성공의 비결로 꼽았다. 젠한국을 세운 뒤 70명 수준이던 R&D(연구개발) 인력을 150명으로 늘린 데 이어 2008년에는 150억원을 투입해 생산 규모를 연간 1300만개에서 2000만개로 증설한 것.생산량의 80% 이상이 미국 레녹스와 독일 빌레로이&보흐 등 메이저 도자기 업체의 주문을 받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또는 ODM(제조자개발생산) 방식으로 판매되는 것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김 회장은 "레녹스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커피잔 세트 100만점을 주문할 경우 중국이나 베트남 업체는 샘플 개발에서 완제품 생산까지 6개월 이상 소요되지만 젠한국은 풍부한 R&D 인력과 생산능력 덕분에 1~2개월이면 끝낸다"며 "금융위기 속에서도 메이저 업체들이 유독 젠한국에만 주문량을 늘린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 2008년 하반기 터진 금융위기를 계기로 상당수 메이저 업체는 중국과 베트남에 맡기던 물량의 일부를 젠한국으로 돌렸다. 심지어 모 업체는 생산성이 낮은 본사 공장 일부를 폐쇄하고,해당 공장의 생산량을 모두 젠한국에 위탁했다. 젠한국에 글로벌 금융위기는 도약의 계기가 됐다.

톡톡 튀는 신제품도 젠한국의 가파른 성장에 한몫했다. 2006년 말 국내 밀폐용기 1위 업체인 락앤락과 제휴를 맺고 선보인 '젠앤락'이 대표적인 예다. 젠한국이 만든 도자기 용기를 락앤락의 플라스틱 뚜껑으로 밀폐하는 방식의 김치통과 반찬통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젠한국의 국내 매출도 출범 당시 40억원 안팎에서 지난해 16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김 회장의 다음 목표는 OEM 및 ODM 비중을 낮추는 대신 '세인트 제임스''카사&모다' 등 자체 브랜드 판매를 늘려 젠한국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명품 도자기 업체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다. 1차 타깃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 이들 지역을 거점으로 현재 20% 수준인 자체 브랜드 판매 비중을 2015년까지 50%로 끌어올린다는 것이 김 회장의 구상이다.

신개념 도자기도 잇따라 내놓을 계획이다. 전자레인지에서 8분만 돌리면 완성되는 '라면용 도자기'를 최근 선보인 데 이어 불에 직접 닿아도 끄떡없는 '도자기 프라이팬'과 '도자기 냄비'도 조만간 출시할 방침이다.

김 회장은 "일각에선 '도자기는 성장성 없는 사업 분야'라고 말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도자기 업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며 "프라이팬 냄비 등 주방기구 분야로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