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의 A부장판사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법원의 잇단 시국사건 무죄판결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데 대해 의견을 듣고 싶어서였다. A판사는 "'법원 때리기'가 너무 심한 것 같다"면서 최근 자신이 법정에서 겪은 사례로 답을 대신했다.

며칠 전 민사재판 도중 사건 당사자 중 한 명이 갑자기 일어나 판사에게 험악한 말을 내뱉은 것.A판사는 "김 사장님,저한테 그러시면 안 됩니다. 사장님은 저를 존중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왜 당신을 존중해줘야 합니까. 판사라서요?"라고 따져묻는 그에게 A판사는 "사장님도 저한테 존중받으셔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는 또 다른 사례를 들었다. 1997년 대만 기업인과 한국 기업인의 민사 분쟁을 맡았는데,조정 과정에서 대만인이 A판사를 불만스럽게 쳐다보는 듯했다. A판사가 통역을 통해 "대만인이라고 해 불공평하게 재판하는 것 같으냐"고 묻자 그는 "대만에 판사 친구가 있는데 그는 최선을 다해 재판한다. 당신도 그러리라 믿는다"고 답했다. 판결이 난 후에도 대만인은 항소하지 않고 불만을 일절 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A판사는 '한국의 판사들은 국민들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재판하고 있다. 국민도 사법부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법원장 차에 계란을 던지는,있어서는 안될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왜일까.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튀는 판결'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부 판사들이 문득 떠오른 생각을 갖고 마치 혼자 새로운 이론을 발견한 것처럼 기존 판결을 무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검사는 "골프는 실력으로 판가름나기 때문에 사행으로 볼 수 없다며 억대 내기골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상식밖"이라고 말했다. 다른 판사들은 골프에 실력이 중요한 것을 몰라서 유죄를 선고했겠느냐는 것.그는 "강기갑 의원 무죄도 공무집행방해와 공용물건 손상 등 다른 범죄를 별개로 본 기존 판결을 무시한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국민들은 최근 일련의 '튀는 판결'들이 A판사의 바람처럼 국민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한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 국민들의 합리적인 의심에 법원이 설득력 있는 대답을 해야 할 때다.

임도원 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