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아키오 일본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우려했던 '패망의 5단계'가 다가오는 걸까.

지난 2007년부터 글로벌 자동차 업계 1위로 군림해온 도요타가 3년 만에 왕좌에서 내려 올 지에 대해 업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도요타자동차는 지난 2007년 1분기에 판매량과 생산대수 기준으로 글로벌 자동차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이전까지 무려 80여년간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로 군림해 온 미국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미국 내 대규모 리콜(결함시정) 사태와 이에 앞서 진행된 판매량과 생산대수 급감, 여기에 몸집을 착실히 키워가고 있는 경쟁업체의 도전에 직면한 도요타가 현재의 입지를 유지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최근 힘을 얻고 있다.

◆판매량·생산대수 급감

26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고급브랜드 렉서스를 포함한 도요타의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은 전년의 897만대보다 116만대(13%) 줄어든 781만대를 기록했다. 급격히 감소한 판매량에 맞춰 생산량도 줄었다. 도요타의 지난해 글로벌 생산량은 전년대비 22.4% 줄어든 637만대, 내수 생산량은 30.4% 줄어든 279만2274대에 그쳤다.

도요타의 이 같은 판매량 감소는 지난 2008년말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이 안이했다는 분석이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마진이 높은 대형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주력모델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최근 국내외 하이브리드카 생산 공장을 증설하고 신형 하이브리드카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며 침체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지만 경쟁업체들의 공략도 만만치 않다.

◆獨 폭스바겐그룹 '맹추격'

현재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 도요타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유럽 최대 자동차업체인 독일 폭스바겐그룹이다.

폭스바겐그룹은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전년대비 1.1% 증가한 629만대의 판매고를 올리며 시장 평균 판매량 증감치(-6%)를 역행했다. 이는 그룹 출범 이래 최대치의 판매실적이다.

아우디를 비롯해 고급차 벤틀리·람보르기니와 부가티, 중저가 브랜드 세아트·스코다 등을 보유하고 있는 유럽 최대 자동차업체 폭스바겐그룹은 지난해 주력 브랜드인 폭스바겐으로만 총 395만대를 판매하며 전년대비 7.8%의 판매 성장률을 달성했다.

여기에 최근 자본·업무 제휴에 합의한 일본 스즈키자동차의 판매량을 합산할 경우 글로벌 판매량은 총 860만대로 늘어나 세계 1위를 달성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즈키는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서 약 230만8000대를 팔았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12월 스즈키의 지분 19.9%를 인수하기로 한 바 있다.

스즈키는 최근 "추가적인 지분 매각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은 바 있으나 폭스바겐은 스즈키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소형차 사업부문 제휴를 통해 이 부문에서도 판매량 상승 여지가 충분하다는 관측이다.

폭스바겐은 생산량에 있어서는 이미 도요타를 추월했다. 지난해 11월 자동차 전문 리서치기관인 IHS 글로벌 인사이트가 발표한 추정치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사이 도요타의 생산량은 약 400만대, 폭스바겐그룹은 440만대를 생산한 것으로 추산됐다.

◆리콜 대수가 생산 대수의 절반

최근 불거진 도요타의 대규모 리콜사태는 치명적이다.

도요타는 지난해 자동차 업계 사상 최대치인 420만대의 차량에 대해 리콜을 시행한 데 이어 지난 21일 230만대를 추가로 리콜한다고 밝혔다. 미국 뿐만 아니라 이어 유럽에서도 같은 문제로 200만대 규모의 리콜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이번 리콜사태는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도요타의 지난해와 올해 리콜대수는 연간 생산대수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 된 셈이다.

리콜 이유는 당초 운전석의 바닥 매트가 가속 페달을 압박하는 문제라고 회사 측은 밝혔으나 올해 진행된 리콜의 경우 가속페달의 기계적 결함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결함문제는 특히 최근 출시된 차량에서 발생빈도가 높아 도요타자동차의 안전성과 신뢰도에 금이 가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도요타가 발표한 리콜 관련 자료를 보면 2008~2010년 사이 출시된 '캠리', '라브4(RAV4)', '코롤라' 등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대량생산 차종이다. 원가절감을 위해 같은 부품을 사용하는 차를 늘리다 보니 발견된 결함사항이 다수의 차량에 해당된 것이다.

이 같은 리콜 사태는 처음이 아니다. 도요타의 리콜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 미국시장에서 판매대수 200만대를 넘긴 직후부터다. 2004년에도 도요타의 리콜 대수는 판매 대수의 절반을 넘겼다. 2005년에는 리콜 대수가 판매 대수를 넘어서는 '굴욕'을 맛봤다. 같은 해 일본 시장에서의 리콜 차량은 190만대에 달해 지난 2001년보다 40배 이상 증가했다.

당시 도요타는 이 같은 리콜 사태가 비용 절감을 위한 모델 간의 부품 공유와 신모델 조기 출시에 따른 것으로 진단, 신모델 출시를 미루는 등 특단책을 내놓고 전사적인 재정비에 들어갔다. 반년에 걸친 재정비 작업 끝에 도요타는 '공룡' GM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서는 데 성공했으나 최근 들어 유사한 이유로 대규모 리콜사태를 맞게 되며 다시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다각도로 닥쳐오는 최근의 위기에 대해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지난해 10월 강연에서 "현재 도요타는 대기업이 패망에 이르는 5단계 중 이미 4단계에 도달했다"며 "지금 구세주에게 매달려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의 대규모 리콜사태가 도요타를 완전한 패망으로 이끌 지, 이번 사태를 잘 마무리 한 후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재건의 길을 걷게 될 지 주목된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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