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제1회 법정변론경연대회 예선이 열렸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20개 로스쿨 72개팀(216명)의 로스쿨 재학생이 지난 한 해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겨뤘다. 참가자들은 재판부와 방청객 앞에서 검사와 변호사 역할을 나눠 맡았다.

이날 공방 중 흥미를 끈 사건은 경찰관과 재개발지역 주민 사이에 벌어진 형사 분쟁이었다. 주민들이 보상금 증액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다 경찰관 옷에 페인트를 뿌린 행위가 '공용물건손상죄'에 해당하느냐고 묻는 문제였다.

변호인 측은 페인트가 묻은 옷이 세탁을 통해 깨끗해지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주며 무죄를 주장했다. 페인트는 세탁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만큼 옷의 효용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공용물건 손상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이에 반해 검사 측은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자국은 남고 제복에 페인트를 묻힌 행위를 공용물건 손상으로 본 대법원 판례가 있는 만큼 유죄"라고 반박했다.

이를 지켜본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본격적인 판례공부나 실무연수를 한 적이 없는 데도 사법연수원 교재 대법원 판례 등을 깊이 연구해 날카로운 논쟁을 펼쳤다"고 칭찬했다. 서로 공방을 펼치는 과정에서 드러난 크고 작은 실수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피고인을 대리하는 변호인팀이 최후 변론에서 유무죄나 양형을 언급하지 않고 "부디 법이 약자들의 편에 서서 민주주의를 지켜주십시오"라고 읍소한 것이 대표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달라는 거요? 무죄라고?형을 적게 달라고?"라는 유머 섞인 질책도 나왔다.

로스쿨에서 법리 위주로 1년 정도 공부한 수준이니 실수가 나오는 건 당연했다. 채점자들도 예비법조인의 적극적인 태도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엔 후한 점수를 주는 모습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준비한 이들의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는 판사도 적지 않았다. "비록 서툴지 몰라도 하나같이 성실하게 변론을 준비해왔다","그런 열정과 패기가 부럽다"는 것.이날 아마추어들의 거칠지만 성실했던 경연대회는 최근 편향판결 시비로 일그러진 법조계의 모습을 잠시나마 잊게 해줬다. 서로 비난하기 바쁜 판사와 검사들이 이들처럼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깊게 파인 갈등의 골도 어느 정도 치유되지 않을까.

서보미 사회부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