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팔자'라는 말이 있다. 이름에 따라서 사주팔자(四柱八字)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물론 성명철학에 따른 것이지만 이름을 바꾸면 사람이건 회사건 마음가짐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지난해 1월말께 이름바꾸기에 여념이 없었다. 서울 여의도동 증권유관기관들의 건물들은 간판을 바꿔달았다.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이름을 각각 변경했기 때문이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한국거래소로, 증권예탁결제원은 한국예탁결제원으로 각각 이름표를 바꿔달았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예탁결제원은 간결하고 대표성을 지니는 이름을 바뀌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증권유관기관으로 도약을 다짐했다.

자산운용협회와 한국선물협회, 한국증권업협회 등 3개 협회는 한 건물로 이사짐을 나르면서 한국금융투자협회로 다시 태어났다. 3개 분야의 업계를 대변하는 창구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협회의 통합은 곧 3개 업무영역을 아우를 수 있게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업계의 기대도 마찬가지였다. 규제는 완화되고 이에 따라 업무영역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증권회사, 자산운용사 할 것 없이 사업확장과 시장점유율 확대 계획을 공공연히 발표하고 나섰다.

하지만 업계에서 지난 1년동안 '금융투자'를 선언하고 나선 사례는 드물다. 굿모닝신한증권이 신한금융투자로 바꾼 게 유일하다. 물론 형식적인 이름보다 내실이 더 중요하다. 때문에 지난 1년 동안 금융투자업계의 내실은 어떻게 다져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금융상품 예상보다 적어…시행령 개정으로 기대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업의 업무를 확대하고 금융투자상품을 포괄적으로 정의했다. 이에 따라 업계는 투자은행(IB)을 육성하고 새롭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증권사들의 금융투자 업무 확대는 선물업 겸영 정도에 그쳤다. 자산운용업이나 신탁업까지 확대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소액 지급결제 기능이 허용되면서 은행권 업무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금융권의 판도도 변할 것으로 예상됐다. 투자자들은 CMA(종합자산관리계좌)로 수시입출금이나 계좌이체, 공과금납부, 신용카드 대금결제 등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CMA계좌수와 잔고는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월15일 현재 CMA계좌수는 1005만4000계좌, 잔고는 38조8000억원에 달한다. CMA계좌수는 카드겸영업무 개시와 지급결제서비스 시행 이후와 비교할 때 7.6% 늘었다. 반면 잔고는 지난해 8월 중 40조9000억원까지 치솟았지만 이후 증가세가 꺾이고 있다.

부동산, 날씨, 재해 등을 다양한 대상을 기초자산으로 한 금융상품들이 쏟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투자자들도 새로운 상품에 흥미를 느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나마 금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장지수펀드(ETF), ETF를 이용한 자산배분펀드 등 정도가 선보이는데 그쳤다.

자본시장법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금융회사는 증권사였다. 브로커리(주식위탁매매) 중심이었던 증권사들은 새로운 투자모델을 찾아보겠다고 발벗고 나섰다.

결과는 신통치 않은 편이었지만 최근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업계는 활기를 띄고 있다. 지난해 12월21일 자본시장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제도가 도입되고 구조조정기업에 투자하는 헤지펀드 설립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SPAC은 다른 기업과의 합병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다수의 개인투자자로부터 공개적으로 자금을 모아 통상 3년 내에 장외 우량업체를 M&A(인수·합병)하는 조건으로 특별 상장되는 페이퍼컴퍼니(서류회사)다. 국내 증권사들은 IB사업에 대한 기회를 SPAC에서 찾기 위해 노력중이다. IPO나 M&A가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이미 자리잡고 있는 제도다.

이문한 동양종금증권 AI전략팀 연구원은 "SPAC 제도는 우회상장 수요를 흡수하고 M&A 활성화, PEF(사모펀드)와의 상호보완 등으로 자본시장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일반투자자, 비상장기업, 증권사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에게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합병에 실패하더라도 투자자들은 원금의 대부분(또는 원금 이상)을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헤지펀드 설립조건 완화해야…세금만 매기지 말고 세제혜택도 있어야

도입시기는 다소 늦어지고 있지만 헤지펀드도 투자상품의 다양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헤지펀드는 국제증권이나 외환시장 등에 투자해 단기이익을 올리는 민간 투자기금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은행과 증권사, 금융공기업 등 투자판단 및 위험부담 능력을 갖춘 적격투자자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를 설립할 수 있다. 헤지펀드의 차입 한도와 채무보증 한도는 각각 펀드 자산의 각각 300%와 50% 안에서 허용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본래의 의미와는 다소 다르게 시행령이 만들어졌다며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당초 헤지펀드의 차입한도는 400%였지만 시행령에서 300%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또 운용자산의 50% 이상을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투자해야만 헤지펀드를 설립할수 있는 것도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성희활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헤지펀드는 원래 의미대로 도입을 하돼 상업은행이나 연기금 등의 참여를 줄여 시스템리스크를 최소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정된 시행령은 헤지펀드 설립을 오히려 위축시킬수 있다"며 "재량권을 주고 다양한 금융기법을 도입할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업계에서는 늦게나마 다양한 금융기법들과 상품들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의욕적인 업계와는 달리 일반투자자들은 투자에 대한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고 있다. 투자할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세금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투자자들은 새로운 상품을 살펴볼 사이도 없이 기존의 금융상품들에 대한 새로운 세금들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건전한 투자방법으로 꼽히는 금융상품인 '펀드' 역시도 각종 세금의 압박을 받고 있다.

주식 매도시에 거래대금의 0.3%를 부과하는 공모펀드 거래세는 올해부터 부과되기 시작했다. 해외투자펀드에 대한 배당소득세도 올해부터 내야 한다. 펀드 설정액의 0.005%를 내는 등록세, 지방자치단체에서 펀드당 세금을 매기는 면허세까지 부과되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펀드에서 뗄수 있는 세금은 다 떼는 형편이다.

펀드에 대한 세금 압박은 계속되고 있지만 반대로 생애설계상품에 대한 세제혜택은 전무한 실정이다. 어린이펀드, 교육비 마련금융상품, 개인연금 등은 장기투자를 유도하는 상품이지만 혜택은 커녕 똑같은 세금문제를 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부터 세금이 부과되는 금융상품이 급격히 늘어났다"며 "현재로서는 업계가 세금을 떠맡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나중에는 펀드수익률이나 투자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의 말을 남겼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