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쯤 늦은 봄날의 휴일이었다. 집에서 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스님들이 고기를 먹는 장면을 본 까닭이었다. 태국의 어느 절을 찾아가 수행하는 스님들의 일상을 촬영해 와서 방영한 것이었다. 이른 아침 홍화색 가사를 입은 젊은 스님들이 시가지로 아침공양을 위해 탁발을 하러 줄지어 나가면 신자들이 길가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맞았다. 신자들은 들고 나온 음식물을 스님들의 바리때에 부어주었다. 불교가 국교인 나라다운 광경이었다.

한 신도가 준 음식물은 닭고기 토막들로 보였다. 주는 쪽도 받는 쪽도 하도 자연스러워 내 눈을 의심했다.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는 수밖에 없었다. 탁발을 끝낸 스님들이 절로 돌아가서 일단은 큰 그릇에 음식을 모았다가 먹을 만큼씩 덜어갔다. 자기가 탁발한 음식을 자기가 먹는 식이었다면 확인이 어려웠을지도 몰랐다. 여럿이서 나눠 먹는 마당이어서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닭고기 토막들이 확연했다. 어찌 저런 법이 있는가. 퍽이나 민망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밤에 자리에 든 뒤에야 어딘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방송국에서 촬영해다가 방영하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일인데 왜 그냥 두었던 것인가. 스님들은 여름철에 손으로 모기 한마리를 잡더라도 살생으로 여겨,그때마다 "아이구! 관세음보살""아이구! 나무아미타불"하고 기도를 한다는 말도 있는데….

다음 날 아침나절에 나는 기어이 그 프로그램을 방영한 방송사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구성작가와 연결이 되었다. "태국에서는 스님들이 고기를 먹는대요. 그래도 괜찮대요. " 구성작가는 이렇게 대답할 뿐 왜 괜찮은지는 답해 주지 못했다. 답답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 뒤 한 달여를 밥자리든 술자리든 서너 명만 어울리면 그 이야기를 꺼냈다. 태국의 스님들을 반찬거리로 안주거리로 올려 놓고 즐긴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를 끝내고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빈 자리를 찾아 앉았더니 뜻밖에도 옆자리에 대학동기 녀석이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제법 가깝게 지냈는데 10년쯤 못 만난 사이였다. 나는 녀석 앞에서까지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녀석은 싱긋싱긋 웃었다. "그거 대학 1학년 교양과목 공부할 때 배운 것인데….삼부정육(三不淨肉)이란 말 기억 안 나?" 나는 머리를 저었다. "불교에서 고기를 못 먹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불교에서 고기를 안 먹는 것이다. 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본 것,나를 위해 죽였다는 말을 들은 것,나를 위해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 불교에서는 먹어도 된다고…." 나는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더없이 부끄러웠다. 배웠는데 모르는 일도 부끄러운 일인데,그로 인해 남을 비난하고 비웃은 행위는 더 큰 부끄러움이었다.

이상문 제지공업연합회 이사장·소설가 kpma@pap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