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도가 준 음식물은 닭고기 토막들로 보였다. 주는 쪽도 받는 쪽도 하도 자연스러워 내 눈을 의심했다.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는 수밖에 없었다. 탁발을 끝낸 스님들이 절로 돌아가서 일단은 큰 그릇에 음식을 모았다가 먹을 만큼씩 덜어갔다. 자기가 탁발한 음식을 자기가 먹는 식이었다면 확인이 어려웠을지도 몰랐다. 여럿이서 나눠 먹는 마당이어서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닭고기 토막들이 확연했다. 어찌 저런 법이 있는가. 퍽이나 민망하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했다.
밤에 자리에 든 뒤에야 어딘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방송국에서 촬영해다가 방영하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일인데 왜 그냥 두었던 것인가. 스님들은 여름철에 손으로 모기 한마리를 잡더라도 살생으로 여겨,그때마다 "아이구! 관세음보살""아이구! 나무아미타불"하고 기도를 한다는 말도 있는데….
다음 날 아침나절에 나는 기어이 그 프로그램을 방영한 방송사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구성작가와 연결이 되었다. "태국에서는 스님들이 고기를 먹는대요. 그래도 괜찮대요. " 구성작가는 이렇게 대답할 뿐 왜 괜찮은지는 답해 주지 못했다. 답답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그 뒤 한 달여를 밥자리든 술자리든 서너 명만 어울리면 그 이야기를 꺼냈다. 태국의 스님들을 반찬거리로 안주거리로 올려 놓고 즐긴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직장 동료들과 술자리를 끝내고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빈 자리를 찾아 앉았더니 뜻밖에도 옆자리에 대학동기 녀석이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제법 가깝게 지냈는데 10년쯤 못 만난 사이였다. 나는 녀석 앞에서까지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녀석은 싱긋싱긋 웃었다. "그거 대학 1학년 교양과목 공부할 때 배운 것인데….삼부정육(三不淨肉)이란 말 기억 안 나?" 나는 머리를 저었다. "불교에서 고기를 못 먹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불교에서 고기를 안 먹는 것이다. 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본 것,나를 위해 죽였다는 말을 들은 것,나를 위해 죽인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 불교에서는 먹어도 된다고…." 나는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더없이 부끄러웠다. 배웠는데 모르는 일도 부끄러운 일인데,그로 인해 남을 비난하고 비웃은 행위는 더 큰 부끄러움이었다.
이상문 제지공업연합회 이사장·소설가 kpma@pap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