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때까진 아인슈타인 우유,초등학교 시절엔 서울 우유,중학교에 가면 연세 우유,고1 땐 건국 우유,고3 후반엔 저지방 우유를 먹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이가 어릴 땐 죄다 천재인 줄 알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대치를 낮춘다는 얘기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춰 생각을 바꾼다는 건데 말이 쉽지 그러기까지 부모의 마음은 찢어진다. 당사자는 더할 것이다. 그러나 달라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하루하루 견디기조차 힘들기 십상이다. 신동으로 주목받던 이들 가운데 불행해진 사람이 많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1956년 뉴욕 필하모니와 협연하고 65년 리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우승,동양의 모차르트 소리를 듣던 피아니스트 한동일씨의 경우 언젠가 연주자에서 교육자로 길을 바꾼 뒤 행복해졌다고 털어놨다. 나이 들면서 예전같지 않은 자신의 연주력을 인정하고 나니 한결 편해졌다는 것이다.

오르막만 있는 길은 없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잘나가던 사람도 언젠간 정상에서 내려올 때가 있다. 개그맨이자 연예기획자인 전유성씨는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라는 책에서 잘 살자면 세상이 주입시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너무 완벽하려 애쓰지 말라고 적었다.

참으면 터지니 힘든 걸 굳이 견디려 애쓰지 말고,편견이 없으면 줏대도 없는 것이니 공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고,사내대장부 콤플렉스에 시달리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는 또 과거에 매이지 말라며 사는 동안 다소 헐렁하고 구김이 있는 것도 괜찮다고 조언했다.

아쉬울 것 없어 보이던 삼성전자 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고 있다. 정확한 원인은 알 길 없는 가운데 잦은 인사이동과 업무 부담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의 일단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많다.

'나만 혼자 몰랐던 내 우울증'을 쓴 노무라 소이치로(일본 호이 의대 교수)는 우울증은 똑똑해서 생기는 병이라고 말한다. 뭐든 잘해야 한다,뒤지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되는 수가 잦다는 분석이다. 그러다 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겉으론 멀쩡하고 쾌활하기까지 한데 정작 본인은 온몸에 힘이 빠지고 속이 답답한 가면우울증 환자도 갈수록 늘어난다고 한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무한경쟁사회의 뒷모습이다. 내려다 보고 살라던 옛 어른들의 말이 새삼 가슴에 와닿는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