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31세 동갑내기 골드미스 4명이 모였다. 브런치를 들면서 3시간가량 쏟아낸 수다의 주제는 당연히 '남자'."도대체 괜찮은 남자는 다 어디에 있는거야?" 끌린다 싶으면 이미 임자가 있고,소개팅에는 번번히 '평균 이하'의 남자들만 나오고.그렇다고 '조각 킹카'나 외제차를 몰고 '짠하고' 나타나는 드라마 속 완벽남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두루두루 적당한' 평범한(?) 남자를 원할 뿐인데.20대 한창 때는 발에 차이는 것 같던 대한민국 평균 남성들.'그 많던 평균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괜찮은 남자의 조건

대한민국 2030 미혼여성이 꼽는 '괜찮은 남자'의 조건은 어느 정도일까.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발표한 '2009 휴먼라이프 연구소 결혼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들은 '연봉 4579만원,자산보유액 2억1587만원,신장 177.34㎝'를 '이상적 배우자상'으로 꼽았다. 배우자의 직업으로는 최근 3년간 변함없이 '공무원 · 공사직원'(15.79%)이 1위를 차지했으며,'금융직(9.46%)''회계 · 세무 전문직(7.06%)''사업가(6.82%)' 등이 뒤를 이었다.

남성(573명)들이 원하는 신부감의 표준형은 '연봉 3242만원,자산보유액 1억4438만원,키 163.93㎝'. 직업군으로는 '공무원 · 공사(14.34%)''교사(14.01%)''일반사무직(9.18%)''프리랜서(6.57%)''금융직(6.23%)'의 순으로 나타났다.

일견 그리 과하지 않은 조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대한민국 평균 초혼 연령(남 31.7세,여 28.3세)이 받는 평균 연봉(남 2994만원,여 2103만원)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즉 대한민국 평균 남녀 모두 평균치 이상의 배우자를 원한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건을 더 까다롭게 따지는 30대 여성들의 심리도 '여초현상'을 느끼게 하는 한 원인이다. A결혼정보회사의 김은진 커플 매니저는 "아직 여유가 있어 그런지 호기심과 모험심 가득한 20대 여성들은 매칭이 쉬운데 그간 다수의 연애 실패 사례를 겪었던 30대 여성들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매칭하는데 번번히 애를 먹는다"고 말한다.

30대 여성들은 그동안 자신이 구축한 캐리어와 세련된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20대 때보다 본인의 조건이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성들은 여전히 여성의 나이와 매력도 간에는 반비례 관계가 성립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플로리스트 오지희씨는 요즘 '스킨스쿠버다이빙' 동호회 활동에 푹 빠져있다. 그는 "주변에서 재즈음악,스포츠,자동차 동호회에 괜찮은 남자들이 많다고 귀띔해줘 호기심에 가입해 봤는데 진짜 멋진 남자들도 많고,성향도 비슷해 잘 어울리고 있다"며 "정모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고 말했다.

홍보대행사에 다니는 이수현씨는 금요일,토요일 밤은 홍대나 강남의 '클럽'에서 보낸다. 친구 중 세 명이 클럽 즉석만남을 통해 결혼에 성공한 케이스를 목격하면서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마음에 들지도 않으면서 2~3시간 마주보고 있어야 하는 소개팅보다는 '물' 좋다고 소문난 클럽에서 잘 노는 괜찮은 애들과 눈 맞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말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괜찮은 여자'라면 남자들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솔로 여성'들의 이 같은 속내를 간파한 패션잡지 '슈어'는 수도권 일대의 남자 분포도를 상세히 그려주면서 신촌과 홍대는 강북권 남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으로 주말에 이곳을 집중 공략하라고 조언한다. 여의도는 삼성증권을 제외한 모든 증권사 본사가 있어 금융권에 종사하는 남성들의 메카인데다 국회에서 일하는 젊은 사무관과 공무원 직종의 남자들과 마주칠 기회도 만들 수 있다. 광화문과 종로는 대한민국 오피스 1번지로 은행 본점,정부 종합청사,통신사,대형 건설사 등 다양한 부류의 대기업들이 있어 소위 '스펙'(조건) 좋은 남자들의 백화점 같은 곳이라고.강남역은 인근의 삼성타운 내 9000명의 직장인 중 70% 정도가 남성이며,수원이나 화성 등지에 있는 대기업 통근버스가 이곳을 거치기 때문에 약속장소로 많이 활용된다는 팁까지 던진다.

반면 청담동이나 신사동 가로수길,삼청동 카페에서 한껏 차려입고 우아하게 앉아있어 봤자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귀띔한다.

애인 만들기도 미친 듯이 해라

골드 미스들의 변명처럼 괜찮은 남자가 없어서 솔로탈출이 안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직장인 김은지씨는 얼마나 적극적인 태도로 주위를 살펴봤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라고 반문한다.

그는 지난 연말부터 '애인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 달간 11번의 소개팅 끝에 이상형에 가까운 연하남을 만났다. "작년 연말 하나씩 제 짝을 찾아 떠나가는 친구들을 보니 마음이 다급해지더라고요. 후회없을 만큼 노력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12월 중순부터 주말은 물론이고,심지어 새해 첫날에도 소개팅을 했어요. 친구의 남편 직장 동료나 심지어 얼굴도 잘 모르는 '친구의 친구' 인맥까지 총동원해 소개팅을 받아냈지요. "

이렇게 한 달간 10명의 남자를 만났는데 단 한 명도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날 수가 없었단다. '결국 안되는구나'하며 포기할 무렵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11번째 소개팅에서 지금의 '남친'을 만났다.

이제 김씨는 주변의 솔로 친구들에게 "세상에 괜찮은 남자들이 꽤 많이 숨어 있는데 단지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한다. "여자라고 얌전빼면서 이것저것 재다가는 그나마 남아있던 괜찮은 남자들도 죄다 '품절남'이 되고 말거예요. 솔로끼리 앉아서 불평할 시간이 어디있어요. 제짝 찾기도 바쁜 마당에." 경험에서 우러나온 김씨의 조언이다.

안상미 기자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