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8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57)의 연임이 확정되자 성명을 냈다. 그는 "버냉키 의장의 지혜와 리더십 덕분에 최악의 경제위기 폭풍이 지나갔다"고 축하했다.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버냉키 의장과 함께 할 일이 많다"고 두터운 신임을 재확인했다.

버냉키 의장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교수를 지냈다. 2002년부터 FRB 이사로 발을 들여놓은 뒤 부시 전 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도 거쳤다. 그는 2005년 10월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후임으로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지명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그를 차기 의장에 재지명했다.

버냉키 의장은 정책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인하해 통화정책 수단이 고갈되면 중앙은행이 헬리콥터로 돈을 살포해서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지론을 견지했다. 덕분에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1920년대의 대공황 발발 원인과 전개 과정을 연구한 탁월한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치자 그런 그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미국으로선 다행이었다. 버냉키 의장은 2008년 1월 열흘 동안 기준금리를 1.25%포인트나 과감하게 낮췄다. 3월에는 JP모건체이스가 베어스턴스를 인수토록 하고,9월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던 리먼브러더스를 파산시켰다. 미 최대 보험사인 AIG에는 850억달러를 투입했다. 이어 10월 의회에서 재무부와 함께 7000억달러의 금융권 구제금융 집행 승인을 받았다. 하이라이트는 기준금리를 2008년 12월 제로 수준(연 0~0.25%)으로 낮춘 일이다. 또 금융사를 지원하기 위해 긴급 대출창구들을 마련하고 국채와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채권 등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1조4000억달러 정도의 유동성을 시중에 풀었다.

그는 벼랑 끝에 선 미국 경제를 구해냈으나 미리 경제위기 경고음을 내지 못했다는 책임론은 피할 수 없었다. 이번에 FRB 의장 인준 역사상 최대인 30표의 반대표를 얻고 그의 연임이 "최선은 아니지만 달리 대안이 없는 선택"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그래서 임기 2기를 맞은 버냉키 의장의 마음은 편치 않다. 출구전략의 범위와 시점을 선택하고 FRB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시중에 과다하게 풀어놓은 자금을 회수하고,경기회복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인플레를 막는 금리정책을 절묘하게 운용해야 한다. 금리인상 등 출구전략을 너무 서둘렀다가는 경기회복세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행시기가 너무 늦으면 제2의 위기를 촉발하는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FRB 내부에서는 잠재적인 인플레를 통제하기 위해 은행들이 FRB에 예치하는 초과지급준비금의 이자를 인상하는 방안을 출구전략으로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인플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초과지급준비금 이자율을 조정하는 게 정책금리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버냉키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리더십까지 발휘해야 한다.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정치인들로부터 부양책을 연장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을 개연성이 없지 않다. 더욱이 상원은 FRB에서 은행감독권을 분리하는 법안을 제출했으며,하원에서는 FRB의 통화정책을 의회가 회계감사하는 법안이 통과된 상태다. 출구전략의 성패와 FRB 독립성 유지 여부를 놓고 버냉키는 다시 영웅과 역적으로 갈릴 수 있는 담장 위를 걷게 됐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