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를 돌아보면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맞아 떨어졌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세계경기 침체를 불러왔다. 동시에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는 성장의 기회가 주어졌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몰락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면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전기·전자, 자동차, 반도체 등의 산업분야는 세계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넓혀갔다. 이는 실적으로 돌아왔고 주가에도 반영돼 지난해 주가상승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금융산업은 오히려 위축되는 양상이었다.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투자기회가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는 엄격한 '투자자 보호' 때문에 가로 막혔다. 지난 1년간 자본시장법은 과도한 규제와 보호라는 철책선을 친 셈이 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자본시장법이 나름대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화하는 자본시장법에 기대…투자자 보호에 '한 목소리'

금융당국 등 유관기관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검토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고 업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업계도 앞으로 정부와 금융당국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과도한 규제로 투자를 위축시키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던 각종 보호장치들도 간소화 작업을 위한 TF팀이 꾸려진 상태다. 일부에서는 투자자 보호장치로만 여겨졌던 '투자성향 정보확인서'와 '투자자 확인서' 등을 통해 고객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있다는 우호적인 의견들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행초기에는 번거롭게 여겼던 고객 정보 확인이 이제는 맞춤서비스의 기반으로 자리잡고 있어 긍정적"이라며 "고객의 투자성향 확인은 지급결제 서비스와 펀드 판매회사 이동제 등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자의 성향을 확인함에 따라 고객의 니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실제 금융투자회사들은 투자성향 정보확인서를 바탕으로 투자상품을 권유하는 맞춤 서비스들을 선보이고 있다.

투자자들도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에 시행된 투자자 보호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협회와 갤럽이 조사한 '2009년 금융투자자의 투자실태에 과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투자자들 중 16%가 표준투자준칙에 따라 투자성향조사에 응했다고 대답했다.

투자성향 조사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이 같은 절차가 자신의 투자성향 파악에 도움이 됐다고 대답한 비율은 40.2%였다. 그러나 투자성향 파악절차를 경험하지 않은 응답자 중에서는 30.7%가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긍정적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경험자가 9.5%포인트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호찬 금융투자협회 조사통계팀장은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성향 파악절차를 경험했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편"이라며 "투자성향 파악의 근본취지 등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인식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진정한 투자자 보호, '투자자 교육'이 출발점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금융상품을 접하는 투자자들의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반토막 난 펀드를 눈뜨고 볼 수 없었던 투자자들은 환매를 서둘렀고 아예 계좌라고는 쳐다보지 않는 투자자들도 있었다. 공포의 시기를 기회로 삼아 추가 투자를 해 고수익을 올린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했다.

지난 1년동안 세계 금융투자환경이 급변한 만큼 투자자들도 인식이 빠르게 전환되기 시작했다. 상투를 잡고 손실을 본 쓰라린 경험 덕분(?)에 '묻지마 투자'에서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위기에 대한 투자자 스스로의 대처능력과 분산투자, 장기투자 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오무영 투자자교육협의회 사무국장은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투자자 교육을 받은 투자자들과 그렇지 않은 투자자들과 차이가 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교육을 받은 투자자들은 자산관리를 생애재무설계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것. 새로운 금융투자상품이나 기존의 상품들도 이 같은 관점에서 선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오 국장은 "투자자들의 인식이 확대될수록 투자자 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초기에는 번거로움만을 호소했지만, 결국 저마다의 투자성향을 파악하고 적합한 금융서비스를 찾아가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자신의 투자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금융상품을 고르는 지혜가 필요하고 그같은 추세가 확산될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투자자들도 이제 금융상품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는 한편 '리스크 관리'나 '목표수익률' 개념을 중시하고 있는 추세다.

금융투자업계도 투자자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예전과 같이 'A펀드가 좋다', 'B상품에 투자하면 무조건 고수익이다' 등의 이유를 붙여 판매하는데 급급하기 보다는 각 투자자 스타일에 맞는 자산관리를 표방하고 나서고 있다.

최근 출시된 자산관리 브랜드만도 삼성증권 'POP', 대우증권 '스토리', 현대증권 'QnA', 대신증권 '빌리브', 미래에셋증권 '어카운트', 동부 '해피플러스' 등으로 넘쳐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한 두푼도 아닌 자산을 맡기면서 1시간의 투자시간도 아까워해서는 안된다"고 꼬집고 "업계와 투자자가 '투자 지식'을 숙지하고 이해해야만 건전한 투자문화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