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고등학생들도 독일 작가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란 수필을 배우는지 모르겠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의 양광이 떨어져 있을 때,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되는 글은 내가 수험생 시절이었을 때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지금도 낙엽 지는 가을에 이 글의 구절들이 떠오르면 설움이 몰려와 가슴이 먹먹해진다.

얼마 전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교실 곽영호 교수팀이 지난 20년 동안 아동학대로 치료받은 76명 중 24명을 대상으로 추적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24명 중 발달장애를 보이게 된 아이가 6명(25%),신체적 후유증을 보이게 된 아이가 3명(12.5%),사회적 · 직업적 기능이 악화된 아이들이 13명(54%)에 이르게 되었다는 조사 결과가 언론에 보도됐다.

신체적 학대를 받은 아동 중 3명이 두개골 골절로 치료를 받았으며,1명은 뇌출혈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한 아이는 신체학대가 얼마나 심했는지 머리와 안면에 골절이 생겼는데 뇌수막염으로 끝내 사망했다고 한다.

이 모든 조사 대상 아이는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았기에 통계에 잡힐 수 있었지만 병원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아동학대의 대상이 된 전체 아이들에 견주면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학대와 '사랑의 매'는 같은 매일지라도 아이들은 그 차이를 잘 안다. 나의 어린 시절,'엄한 아버지'하면 자식이 잘못했을 때 종아리에 피가 맺히도록 때리는 아버지를 뜻했다.

'맞을 짓'을 한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고,매를 맞으면서도 억울해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이를 가볍게 때리더라도 머리를 때리거나 뺨을 때리면 아이는 화가 나는 법이다. 아이의 눈에서는 후회의 눈물이 흘러야지 분노의 눈물이 흘러서는 안 된다.

1988년 개정된 어린이헌장은 전문(前文)이 "어린이 날의 참뜻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길잡이로 삼는다"이고 제 9절이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 되고,나쁜 일과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이다.

어린이 헌장이 있으면 무엇 하는가. 어린이 날이 있으면 무엇 하는가. 아직도 이 땅에는 학대받는 어린이들이 참으로 많은데.학대의 후유증 때문에 발달장애를 겪거나 사회적 · 직업적 기능이 악화되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인데.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게 된 우리 사회에서 노인문제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는데,이와 아울러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어린이들의 인권이다.

우리 이웃에 매 맞는 아이가 있다면 '부모가 자식 때리는 것이야 교육의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일회성 매인지 상습적인 신체적 학대인지 잘 살펴보고 조처를 취해야 한다. 아이들은 관계기관에 호소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하기 전에 우리 이웃집 아이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지 살펴보자.북한주민의 인권과 소외계층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아이들의 인권이다.

조사에 따르면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부모가 절반 이상이었고 학대 장소도 집 안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아이에게 집이 지옥으로 인식되면 안 된다. 울음 우는 어린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부모나 친인척의 학대로 숨어서 울음 우는 어린이가 없도록 우리 모두 어린이 보호자로 나서도록 하자.

이승하 < 시인ㆍ중앙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