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게임엔진 개발자 신광섭씨 "車 움직이는 엔진처럼 게임에 '생명'을 불어넣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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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 '심장'을 달다…그래픽·소리·캐릭터 움직임·폭발…
수십억짜리 '명품엔진'… '언리얼 엔진' 3D중 가장 뛰어나
요즘 트렌드는… 美선 '소셜 네트워크' 게임 인기
수십억짜리 '명품엔진'… '언리얼 엔진' 3D중 가장 뛰어나
요즘 트렌드는… 美선 '소셜 네트워크' 게임 인기
급기야 입이 돌아가는 안면신경 마비현상까지 생겼다. 게임 출시를 앞두고 밤낮없이 철야 작업을 하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중이었다. 한 달 넘게 입이 돌아간 채로 프로그래밍에 몰두했다. 집에 들어가는 건 한 달에 한 번꼴이었던 시절.그래도 괘념치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게임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에픽게임스코리아의 신광섭 과장(29)은 '게임엔진 개발자'다. 말 그대로 게임을 구동시키는 엔진을 개발하는 사람이다. 대여섯 살 때부터 게임의 매력에 빠졌고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어 게임엔진 개발자가 됐다.
그에게 게임은 '나를 잊을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이다. 게임이 인생의 전부라는 신 과장을 지난 28일 오후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면서요.
"보통 아이들은 오락실을 드나들잖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컴퓨터게임에 빠졌어요. 모니터 속에서 신천지가 열리더군요. 고등학교 땐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원에 다니다 선생님께 걸려서 혼난 적도 있었죠.한남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했고 로봇축구 동호회에서 활동하기도 했어요. 졸업 후엔 '게임개발자 사관학교'로 유명한 게임 개발업체 소프트맥스를 거쳐 지난해 에픽게임스코리아에 합류했죠."
▼게임용 엔진이 뭡니까.
"차를 예로 들어 볼까요. 세단,스포츠카,승합차,버스 등 다양한 종류의 차량들이 있죠.외관과 용도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 차량을 움직이는 심장 역할을 하는 건 엔진입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예요. 차량용 엔진은 하드웨어인 데 비해 게임용 엔진은 소프트웨어라는 게 다를 뿐이죠.비디오(콘솔)게임,온라인게임,PC게임,모바일게임 등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게임엔진입니다. "
▼게임엔진이 게임을 구동시키는 역할을 하는군요.
"그렇습니다. 게임의 그래픽과 소리,캐릭터의 미묘한 움직임,강렬한 폭발 효과,플레이,동영상 등 모든 것이 엔진을 기반으로 유기적으로 돌아갑니다. 게임 속에 펼쳐지는 세상을 만드는 거죠.다만 게임 종류와 플랫폼에 따라서 엔진이 조금씩 다릅니다. "
▼국내 게임업체들은 게임용 엔진을 직접 개발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게임회사들은 엔진을 구입해서 사용하죠.게임엔진 가격은 작게는 몇 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다양합니다. 엔진을 만드는 데 길게는 몇 년씩 걸리기 때문에 시간 절감 차원에서 아웃소싱을 하는 거죠.또한 엔진개발은 고도로 숙련된 전문인력과 노하우를 필요로 합니다. 국내에는 게임엔진 개발회사가 거의 없지만 미국 · 유럽에는 전문 개발사들이 활성화돼 있어요. 에픽게임스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본사가 있는 대표적인 게임엔진 개발사죠."
▼게임엔진을 '판다'는 개념이 잘 와 닿지 않습니다.
"사실 게임용 엔진이라는 것은 복잡한 컴퓨터 언어로 이루어진 일종의 소프트웨어입니다. 게임엔진을 구매한 게임업체에는 이 소스를 내려받을 수 있는 계정을 알려줍니다. 그 회사에서 엔진을 다운받은 뒤 이를 자사에서 기획한 게임에 적용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저희가 애프터 서비스까지 해 줘요. 게임엔진 개발자들끼리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돼 있습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거든요. "
▼다른 게임회사가 고객이 되는군요.
"게임은 출시한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온라인게임의 경우 수차례의 시험 테스트를 통해 단점을 보완하고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하거든요. 게이머들의 의견도 수렴해야 하고요. 비디오게임 역시 시리즈물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찬가지입니다. 엔진을 구입한 회사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요구를 들어줘야 합니다. "
▼게임용 엔진은 종류가 다양한가요.
"언리얼 엔진과 크라이 엔진,소스 엔진,주피터 엔진 등이 있습니다. 언리얼 엔진은 '명품엔진'이라 불릴 만큼 수십억원대의 고가를 자랑합니다. 에픽게임스에서 개발했죠.3차원(3D) 엔진 중 성능이 가장 뛰어나며 총싸움 게임(FPS),인공지능 게임,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MMORPG)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에 호환할 수 있어요. 크라이 엔진은 비교적 싼 것이 특징인데 지형 표현에 강합니다. 다만 총싸움게임에만 적합해요. 소스 엔진은 최근 국내 게임사들이 선호하고 있는 엔진이며 주피터 엔진 역시 크라이 엔진처럼 총싸움 게임에만 잘 맞는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한 게임으로는 뭐가 있습니까.
"엔씨소프트에서 선보인 히트작 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 '리니지2'가 언리얼 엔진을 사용한 대표작입니다. 레드덕의 총싸움 게임 '아바'와 웹젠의 '헉슬리' 등도 있고요. 이들 게임사가 우리 고객이죠.외국 게임으로는 '로스트 오딧세이''바이오쇼크''매스 이펙트1/2'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언리얼 엔진은 3.0 버전까지 나온 상태입니다. "
▼본인의 손을 거친 게임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대표작으로는 소프트맥스에서 출시한 '마그나카르타' 시리즈가 있습니다. 역할수행게임(RPG)으로 비디오용과 컴퓨터용이 있고요 플레이스테이션2,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PSP),엑스박스360 등의 다양한 플랫폼용으로 개발했습니다. 마그나카르타 한 편을 만드는 데만 4년가량 걸렸죠.요즘에는 저희 고객사를 도와주며 에픽게임스의 히트게임인 '기어스 오브 워'에 사용된 언리얼 엔진을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라는 게 손에 잡히는 실체가 아니다 보니 이를 만드는 과정 역시 보이지 않는 것과의 싸움입니다. 개발에 얼마나 걸릴지 예측할 수 없어요. 항상 변수가 발생하기 마련이고,여태까지 해 온 일을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
▼취미였던 게임을 직업으로 삼고 나니 어떤가요.
"게임개발자들은 새로운 게임이 나오면 꼭 플레이를 해 본 다음에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게임을 사랑했지만 이제는 예전만큼 매달리지 않아요. 또 내가 만들고 싶은 게임과 게이머들이 원하는 게임은 다소 차이가 있더군요. 안타깝게도 제 아내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아내 눈치를 보느라 게임을 거의 못하게 되던 걸요. "
▼게임에도 트렌드가 있나요.
"미국에선 소셜 네트워크(SNS)게임이 인기입니다. 우리나라 싸이월드와 비슷한 페이스북 등의 친구들을 초대해 농장을 운영하는 단순한 게임이 지난해에만 3400억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온라인의 인맥을 이용해 사람들을 모아야 하고 트랙터,품종 등도 구입해야 하죠.국내에도 곧 상륙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최근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있잖아요. 향후 모바일을 플랫폼으로 한 게임이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고 저희도 대비하고 있습니다. "
▼어떤 게임을 만들고 싶습니까.
"게이머들이 정신없이 빠져들 만큼 작품성 있고 기술력 뛰어난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테이블 위에 놓인 병이 실감나게 깨지는 등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그런 게임 말이죠.게임은 내가 누구라도 될 수 있고 현실의 나를 잊을 수 있는 또 다른 세계라고 생각해요. 세계인들이 즐기는 게임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합니다. 게임의 심장을 만드는 일은 참 매력적이거든요. "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