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0회째를 맞은 스위스고급시계박람회(SIHH)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면서도 복잡한 기계식 시계들의 경연장이다. 바쉐론 콘스탄틴,오데마 피게(AP),예거 르꿀뜨르(JLC),IWC 등 시계 애호가들의 로망인 '위버 럭셔리'(초고가 명품)급 브랜드들이 지난 1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신제품의 첫선을 보이는 자리다. 박람회 초청 대상은 세계 각국의 바이어와 VVIP(초우량 고객)들이다. 대부분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하는 값비싼 기계식 시계들로 손으로 태엽을 감는 수동이나 손목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동력을 얻는 오토매틱 제품이다. 건전지로 움직이는 쿼츠 시계나 디지털 시계는 아예 찾아볼 수 없다. 지난 18~22일 스위스 제네바 팔렉스포 전시장에서 열린 SIHH에서도 19개 럭셔리 브랜드의 최신작들이 총출동했다. 특히 기존 히트작의 새로운 버전과 여러 개의 특수 기능 장치가 함께 장착된 다기능 시계,예술적 미학이 녹아든 제품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든 바이어들과 시계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위버 럭셔리의 빅3


시계 조사업체인 월드워치리포트가 SIHH를 앞두고 120개 고급시계 모델의 선호도를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3대 인기 고급시계'로 JLC의 '리베르소',AP의 '로열오크',IWC의 '포르투기즈'가 꼽혔다. 이번 SIHH에선 실제로 각 브랜드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인지도가 높은 이들 모델의 최신 버전이 선보여 관심이 집중됐다.

1931년 폴로게임 선수용으로 개발된 리베르소는 앞뒤로 180도 회전하는 시계 케이스가 트레이드 마크.올해 주력 모델인 '리베르소 스콰드라 팔레르모 오픈'(1400만원대)은 스틸이나 핑크골드에 처음으로 고무를 입힌 케이스를 적용해 고온이나 고압에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높였다.

로열오크는 럭셔리 스포츠 시계의 대명사인 AP의 대표 모델로 옥타곤(8각형) 형태에 8개의 나사(스크루)로 몸체를 고정시킨 디자인이 특징.신모델인 '로열오크 어프쇼어 그랑프리'는 다이얼(시계판)은 자동차 계기판,크라운(태엽을 감는 손잡이)은 기어,베젤(시계판 위에 유리를 고정시키는 테두리)은 원판 브레이크 모양으로 파워풀한 경주용 자동차를 연상시킨다. 가격은 소재에 따라 5000만~1억5000만원대.

IWC의 클래식 시계인 '포르투기즈'는 20~30대 젊은 층을 겨냥해 러버밴드로 스포티한 느낌을 살린 '요트 클럽'(1500만원대)을 선보였다. 또 포르투기즈 시리즈 중 처음으로 중력으로 생기는 오차를 줄여주는 특수 장치인 투르비옹을 장착한 시계를 6900만~1억5000만원대에 내놓았다.

◆'그랑(Grande) 컴플리케이션'의 절정

'그뢰벨 포지'와 '리처드밀'은 올해 SIHH에 첫 참가한 뉴 페이스들이다. 세계 최고 기술력으로 SIHH의 높은 문턱을 넘은 브랜드답게 '그랑 컴플리케이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시계들을 출품했다. '그랑 컴플리케이션'은 지름 30~40㎜의 시계에 투르비옹이나 '미닛리피터'(시 · 분을 소리로 알려주는 장치),퍼페추얼 캘린더(한 달이 28,30,31일인 경우와 윤년까지 자동으로 인식해 날짜를 표시해 주는 기능) 등 고난도의 특수 장치를 2개 이상 갖춘 복잡한 시계를 말한다.

그뢰벨 포지는 3차원의 입체적인 시계판에 꿈의 기술로 불리는 투르비옹을 두 개 장착해 시계 오차범위를 더욱 줄인 '더블 투르비옹',리처드 밀은 투르비옹이 장착된 시계 중 가장 얇은 두께(8.70㎜)의 'RM 017 울트라신'을 대표작으로 내놨다. JLC는 밤하늘의 천체도가 그려진 지름 44㎜의 다이얼에 미닛리피터와 다이얼 위를 도는 투르비옹,퍼페추얼 캘린더 등이 포함된 일명 '천체'시계를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이들 제품은 일반 시계보다 부품이 2~3배 많은 2000~3000개가 들어가고 가격도 수억원을 호가한다. '천체'시계의 경우 5억5000만원에 달한다.

◆시계와 예술의 만남

공예가들과 협업을 통해 예술과 시계를 접목시킨 새로운 모델들도 주목받았다. 반클리프앤아펠의 '미드나잇 엑스트라오디너리' 시리즈(6억원대)는 조각가 올리비에 부쉐가 다이얼 위에 다양한 색깔의 돌과 금속을 세공해 붙이는 방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풍경을 표현한 시계 3종과 일본 칠기 장인인 하코세산이 일본 풍경을 그린 시계 2종으로 구성됐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일본 칠기공예사인 조히코와 손잡고 '메티에 다르' 시리즈(3종 · 3억9000만원)를 내놨다. 무브먼트가 그대로 드러나는 다이얼 바깥 표면에 소나무,매화,대나무 등이 그려져 있어 정교하게 돌아가는 금속 부품들과 동양의 미학을 담은 칠기그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제네바(스위스)=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