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공무원이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국제기구가 뭐 하는 곳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어만 잘 하면 국제기구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

홍은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 및 경쟁력 통계실장(55 · 사진)은 "'내가 이 기구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얘기하지 못한다면 국제기구에서 일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홍 실장은 OECD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정년보장 계약(tenure)을 체결한 정직원이다. 통계청에서 일하다가 1998년 통계분석관(Administrator) 직급으로 OECD에서 일하기 시작해 5년 전 65세 정년을 보장받았다.

그는 그간 "수많은 한국 학생들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며 방법을 물어왔지만 '왜 여기 오려고 하나'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는 학생은 드물었다"고 했다. 그는 6년 전 처음 정년보장 계약을 신청했을 때 거절당한 경험을 소개했다. '엑설런트'를 받은 근무 평가 실적으로 충분할 줄 알았는데 "왜 당신이냐(WHY YOU?)"는 직접적인 질문에 할 말이 없었다는 것.실적이 나빴다면 잘랐을 것이므로 월급을 주는 것이 곧 엑설런트 평가에 대한 보상이라는 게 국제기구의 논리였다. 홍 실장은 "결국 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다시 지원하고서야 정년 보장을 받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솔직히 출세를 하려면 기회가 많은 한국에서 하는 게 좋다"고 그는 학생들에게 권했다. 분담금 비중이 작은 한국인은 일본인 등에 비해 훨씬 불리한데다 상급자가 됐을 때 책임감과 업무량이 급격히 늘어나 오히려 기피하는 직원들도 많기 때문이다.

홍 실장은 "그래도 국제공무원이 되고 싶다면 적극적인 의사소통 의지와 뛰어난 영어 듣기 · 읽기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발음은 엉망이어도 괜찮지만,수없이 쌓이는 자료와 밀려드는 회의에서 오가는 내용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면 곧 뒤처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교육받을 때처럼 '꿀 먹은 벙어리' 노릇을 하는 것도 왕따가 되는 지름길이다.

홍 실장은 "한국은 아직도 OECD 등 국제기구에서 중 · 장기적으로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국제기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OECD와 같은 국제협력기구는 회원국들의 논의기구인 위원회(committee)에서 대략적인 합의가 이뤄진 후 파리의 사무국(headquarter)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미묘한 부분에서 출신 국가에 유리한 문구를 사용하는 등 국가 간 '파워 게임'이 이뤄지고 있으나 한국인 직원이 적어 한국 입장은 거의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한국인 국제공무원이 많이 늘어야 하는 이유다.

홍 실장은 "사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OECD 등 국제기구에서 위상이 높아질 수 있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선진국도 후진국도 아닌 우리나라는 2차대전 이후 무(無)에서 시작한 나라로서 후발 국가들에 목표국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자,교량자로서 국제사회에서 할 일이 많다는 것.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 내야 하는 '세금'인 각종 분담금과 개발원조 비용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파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