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월 일본학병을 탈출한 장준하와 그 일행 50명은 중경(重慶)에 왔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각 당파가 일행을 이간시켜 분리 포섭하려는 공작을 보고 격분했다. 2주 뒤 임정 주회에서 장준하는 그 유명한 '폭탄선언'을 한다. "우리는 독립의 손발이 되고자 사경을 넘고 수천리를 걸어 이곳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시 떠나 일본군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일본군에 들어가면 꼭 항공대에 지원해서 중경 폭격을 자원해 이 임시정부청사에 폭탄을 투하하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선생님들에게 아직 왜놈에게의 설욕의 뜻이 불타고 있다면 어떻게 이렇게 네 당,내 당 하고 겨누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한나라당의 네 당 내 당 싸움이 상호 막말하기를 넘어 협박하는 수준에까지 왔다. 좌파정권 10년간 쌓인 쓰레기를 청산하라고 국민은 이 당에 정권과 170여 국회의석을 찾아주었다. 그러나 이 당 의원들은 광우병촛불,용산사태,미디어법,어느 때나 서로 끌어내리느라 국회를 고철보다 더 쓸모없는 물건으로 만들었다. 국가이익은 희생되더라도 상대방이 못되기를 바라는 두 파벌로 갈라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 이래 국회를 없애거나 확 줄여버리자는 국민여론이 비등함을 주시해야 한다.

이 집단들이 당을 쪼개든 말든 이는 그들의 문제고,당장은 국회의원으로서 국가현안을 처리해야 한다. 세종시 처리는 현재 가장 중요한 국가적 사안일 것이다.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은 두 개의 제안을 담고 있다. 첫째 정부이전 백지화는 너무나도 명백한 수도분할,정부 쪼개기의 부당성에 비춰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제안이다. 이것이 세종시 수정을 하는 유일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대학 및 기업 유치,국제과학비즈니스 지구지정 등 선물 패키지는 관 주도로 자족도시를 다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행정부 이전을 포기시키기 위한 비용,즉 정부이전이라는 '인질(hostage)을 풀기 위한 몸값(ransom)'일 뿐이다. 그러므로 국가적 희생을 최소화하는 대책은 이 몸값을 최대로 줄이는 것,아마도 '현 상태에서 세종시 건설 중단'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이끄는 집단은 기업이지 정부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관이 계획해서 거대한 경제도시를 만들 때인가.

주지하다시피 행정부 이전은 과거 정치가들이 충청도에서 재미 좀 보기 위해 충청도에 약속한 선물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것이 국가를 망치는 말도 안되는 선물이라고 판단해 충청도에 다른 선물을 대신 주자는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새로운 선물 값은 그간 야당과 충청권 정치집단의 저항이 커지고,여기에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불을 질렀기 때문에 이처럼 커지게 됐다. 이제 이 수정안을 끝으로 끝없이 국민을 가르고 정치를 오염시킨 세종시 문제는 마감지어야 할 것이다. 이 정부 제안은 국회에서의 토론 표결 과정을 거쳐 확정됨이 대의민주주의의 과정이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은 국민과의 약속과 신뢰가 중요하므로 국회에서 토론조차 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는 이제 과거 잘못된 약속이나 결정을 절대 고칠 수 없는 것인가. 나라의 국회가 과거의 국가적 오류를 수정할 아무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국민과 국가에 봉사하는 민주주의기관이 될 수 있는가. 이런 국회의 무능이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과거 박정희시대 권위주의 정치를 회상하게 하는 것 아닌가.

얼마 전 KBS 여론조사에서는 세종시 수정안을 국민투표로 처리하자는 의견이 57.3%로 절반을 넘어섰다. 결국 국회나 대의정치는 우리 국가 수준에 사치스러운 것인가. 지금은 국회의원들 스스로 국회에 폭탄을 날리고 있는 모습만 보인다.

김영봉 < 중앙대 명예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