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은 지난달 식품 부문을 담당할 '아줌마' MD(상품기획자) 세 명을 뽑았다. MD는 유통 매장에서 브랜드의 입 · 퇴점을 관리하고 차별화한 상품을 들여와 고객에게 소개하는 전문직.국내 유통업계에서 주부를 MD로 채용한 것은 처음이다.

과자 담당 윤남기씨(38)와 반찬 담당 이성희씨(35),지방매장을 맡은 윤향내씨(32)를 31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식품매장에서 만났다. 100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뽑힌 세 사람은 "10여개의 백화점 매장과 협력업체 수십개를 관리하는 MD 일이 힘들다고 하지만 아이 키우고 살림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맏언니 격인 윤남기씨는 대학에서 지리교육학을 전공했지만 요리가 좋아 도쿄제과학교로 유학해 제빵을 공부했다. 미국 보스턴 매리어트호텔에서 현장 경험을 쌓은 뒤 한국으로 돌아와 제빵 · 제과 전문잡지 기자,김영모과자점 매니저 등을 거쳤다. 식품 MD직에 지원한 이유를 묻자 "아이들이 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전문성을 살리고 싶어 도전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뒤 CJ프레시웨이에서 8년간 영양사로 일했다. 윤향내씨는 프랑스 파리의 요리전문학교 르코르동블루에서 공부한 재원.한국 분교에선 프랑스 요리사의 통역을 맡았으며 직접 강의도 했다.

세 사람은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전업 주부가 된 케이스다. 이번 취업 과정에도 남편의 지원이 든든한 힘이 됐다. 아이들은 친정 어머니나 도우미에게 맡기고 출근한다. 이들은 주부 MD가 된 뒤 유명인이 됐다. 윤남기씨는 "대형 백화점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동네 아줌마들에게 매일 인사를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백화점 식품관을 업그레이드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기존의 남성 MD들이 놓쳤던 부분을 꼼꼼하게 짚어낼 것으로 백화점 측은 기대하고 있다. 주부를 MD로 기용하자는 아이디어는 이철우 롯데백화점 사장이 냈다. 윤향내씨는 "사장님과 면접할 때 식품매장을 이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을 주부의 시각에서 가감없이 다 얘기했다" 며 "너무 비판만 늘어놔 불합격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윤남기씨는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백화점 식품매장에서 장을 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며 "유모차를 끌고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아늑한 매장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줌마 MD 삼인방은 입사한 뒤 식품업계에서 '시어머니'로 불린다. 이씨는 "매장 직원이나 협력업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긴장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들은 전국 점포와 지방 공장,경쟁 점포를 돌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힘들지 않냐고 묻자 "육아와 살림이 체력적 · 심리적으로 더 힘들다" 며 "똑똑한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기 때문에 더 많은 주부들이 사회로 나와 활약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