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 탄생 100주년…다시 길을 묻다] (上) "그렇게 좋아하던 골프, 회의때는 농담이라도 꺼낸 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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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세기의 승부사 이병철
이필곤 회장이 본 호암의 리더십
이필곤 회장이 본 호암의 리더십
1965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비서실 차장과 제일제당 상무,삼성물산 부회장을 지낸 이필곤 알티캐스트 회장(70 · 사진)은 호암의 리더십을 '공유의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호암을 '스승'이라고 부르는 이 회장으로부터 생전의 얘기를 들어봤다.
▼호암이 한국의 다른 창업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본 식민통치를 뼈저리게 경험해서인지 '국가'를 엄청나게 강조했다.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항상 언급했다. 그래서 신사업을 검토할 때 '이익이 나도 하면 안 되는 사업이 있고,이익이 안 나도 해야 할 사업이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
▼인사를 상당히 중시했다고 들었는데,사람을 어떻게 기용했나.
"스스로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일 잘하고 능력 있으면 사장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 친인척 등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
▼회의 스타일은 어땠나.
"비서실 직원들을 자주 점심식사 자리로 불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날카로운 질문이나 지시,질책들이 오가는 바람에 밥을 제대로 먹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점심자리가 끝나면 직원들은 구내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일이 많았다. 그 자리가 본인의 정보를 직원들과 공유하는 자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
▼개인적으로 혼도 많이 났겠다.
"삼성물산 부사장 시절이었다. 우리나라는 원재료를 실수요자가 수입하는 구조라서 종합상사 매출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했다가 혼쭐이 났다. '국내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종합상사가 해외에서 직접 개발해 국내에 들여오면 되는데,왜 검토도 안 하고 보고하느냐'고 질책받았다. 열심히 하다가 발생한 실수는 용납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가차없었다. "
▼사장들에게 요구했던 덕목이 있다면.
"남의 말 잘 들으란 얘기를 자주 하셨다. 스스로 그런 분이었다. 특히 성공한 사람,실패한 사람,지지부진한 사람 모두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고문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장들에게는 '배울 생각은 안 하고 자존심 내세우지 말라'고 혼을 내곤 했다. "
▼호암이 생전에 즐겨 만났던 사람들은.
"장기영 전 경제부총리,신용호 교보 창업회장 등과 수요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어울렸고,일본 기업의 원로들을 많이 만나셨다. 신현확 전 총리,김준성 전 경제부총리,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 같은 분들과도 자주 만나 취미와 사업에 관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 "
▼어떤 스타일의 리더였나.
"골프만 보면 안다. 그렇게 좋아하는 골프였지만 회의 때는 농담이라도 골프 얘기를 꺼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세번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경영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
▼호암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장관이 호암에 대해 '이 회장은 5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선견력과 추진력이 강했다. 용인자연농원(현 삼성에버랜드) 개발은 향후 국토 개발이 주요 이슈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선견력의 사례였다. "
▼호암이 생존해 있다면 한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줄 것 같은가.
"사람 얘기를 다시 꺼내실 것 같다. "
글=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호암이 한국의 다른 창업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일본 식민통치를 뼈저리게 경험해서인지 '국가'를 엄청나게 강조했다.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국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고 항상 언급했다. 그래서 신사업을 검토할 때 '이익이 나도 하면 안 되는 사업이 있고,이익이 안 나도 해야 할 사업이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
▼인사를 상당히 중시했다고 들었는데,사람을 어떻게 기용했나.
"스스로 일을 열심히 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일 잘하고 능력 있으면 사장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줬다. 친인척 등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
▼회의 스타일은 어땠나.
"비서실 직원들을 자주 점심식사 자리로 불렀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날카로운 질문이나 지시,질책들이 오가는 바람에 밥을 제대로 먹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점심자리가 끝나면 직원들은 구내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일이 많았다. 그 자리가 본인의 정보를 직원들과 공유하는 자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
▼개인적으로 혼도 많이 났겠다.
"삼성물산 부사장 시절이었다. 우리나라는 원재료를 실수요자가 수입하는 구조라서 종합상사 매출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했다가 혼쭐이 났다. '국내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종합상사가 해외에서 직접 개발해 국내에 들여오면 되는데,왜 검토도 안 하고 보고하느냐'고 질책받았다. 열심히 하다가 발생한 실수는 용납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가차없었다. "
▼사장들에게 요구했던 덕목이 있다면.
"남의 말 잘 들으란 얘기를 자주 하셨다. 스스로 그런 분이었다. 특히 성공한 사람,실패한 사람,지지부진한 사람 모두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 고문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장들에게는 '배울 생각은 안 하고 자존심 내세우지 말라'고 혼을 내곤 했다. "
▼호암이 생전에 즐겨 만났던 사람들은.
"장기영 전 경제부총리,신용호 교보 창업회장 등과 수요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어울렸고,일본 기업의 원로들을 많이 만나셨다. 신현확 전 총리,김준성 전 경제부총리,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 같은 분들과도 자주 만나 취미와 사업에 관한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 "
▼어떤 스타일의 리더였나.
"골프만 보면 안다. 그렇게 좋아하는 골프였지만 회의 때는 농담이라도 골프 얘기를 꺼낸 적이 한번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세번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경영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다. "
▼호암의 가장 큰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장관이 호암에 대해 '이 회장은 5년 앞을 내다보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선견력과 추진력이 강했다. 용인자연농원(현 삼성에버랜드) 개발은 향후 국토 개발이 주요 이슈가 될 것임을 보여주는 선견력의 사례였다. "
▼호암이 생존해 있다면 한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줄 것 같은가.
"사람 얘기를 다시 꺼내실 것 같다. "
글=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