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배기의 크리스털 그릇 가게는 어디에 있을까? 예쁜 크리스털 잔에 담긴 차를 한 잔 맛볼 수 있을까? 모로코 탕헤르의 카스바에서 '산티아고'의 체취를 더듬는다.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양치기 산티아고 말이다. 이른 아침이라서인지 카스바는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닌 듯 적막하기만 하다. 하얀 칠을 한 3,4층 높이의 허름한 집 창문은 죄다 굳게 닫혀 있다. 그 사이로 미로처럼 얽힌 골목은 좁디 좁아 옆사람 숨소리와 발소리까지 울릴 정도다. 주머니 두둑한 아랍상인들,영국과 프랑스의 지리학자들,그리고 독일 군인들로 북적였던 좋은 시절은 애초에 없었던 듯하다.


Take 1) 산티아고의 흔적, 탕헤르
아니,탕헤르는 돈과 물자로 흥청대던 국제적인 도시였다. 1956년까지만 해도 그랬다고 한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로 스페인의 타리파와 14㎞ 떨어진 탕헤르는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들어가는 관문 격이다.

탕헤르를 차지하기 위한 19세기 열강들의 다툼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모로코가 스페인과 프랑스로 분할됐을 때 탕헤르는 여러 나라의 관할지로 쪼개졌다. 어느 한 나라에 완전히 속하지 않은 국제 공동관리하의 자유무역항으로 전성기를 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1956년 독립과 함께 모로코로 반환되면서 그 모든 것이 옛 영화가 돼버렸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라로 떠났다. 상권도 아프리카의 지브롤터 격인 스페인령 세우타로 넘어가면서 공동화됐다. 1471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세운 이 카스바(요새)가 탕헤르의 그 곡절 많은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성벽에 난 작은 문을 지나니 잔잔한 바다가 보인다. 배를 타고 건너온 스페인의 타리파가 지척인 지브롤터 해협이다. 그리스 신화 속의 헤라클레스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는 해협이다. 헤라클레스가 헤라의 12가지 난제로 시험당했을 때의 한 과제가 게리온의 황소무리를 서쪽에서 데려와 에우리스테우스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 과제를 위해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야 했던 헤라클레스는 아예 산줄기를 뚝 자른 뒤 벌려 길을 텄다고 한다. 그때 지브롤터 해협이 생겨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났다는 것이다.

카스바의 메디나(구시가 또는 시장)도 조용하다. 굳게 닫힌 가게의 철제 문 앞에 자리를 깐 상인들이 흥정 없이 과일이며 채소를 판다. 담배 서너 갑을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도 벌써 지루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칼자루에 마음을 빼앗겨, 도와주겠다고 접근한 남자가 돈을 갖고 튀는 줄도 몰랐던 산티아고의 그 메디나 풍경이 아닌 것 같다. 불어·영어·스페인어로 간판을 써 놓은 한 기념품점도 한산하기 그지없다. 골목 한 구석의 인터넷 카페도 활기를 잃은 지 오래된 느낌이다. 현지인 가이드 사이드씨가 정원이 제법 좋은 집을 가리킨다. 히치콕 영화에 나온 게리 그랜트란 배우랑 살기도 한 미국 여자가 거주했다는 집이란다. 옛날에는 이 동네도 '물이 꽤 좋았다'는 뜻인 것 같다. 카스바 바깥에 붙어 있는 옛 스페인지구의 제법 근사한 건물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옛 영화의 단서를 찾는다.

Take 2) 사나이의 사랑, 카사블랑카
카사블랑카로 향한다. 탕헤르에서 대서양에 접한 길을 따라 버스로 4시간 반 거리에 있는 도시다. 중년층이며 영화를 즐겼다면 도시 이름이 낯설지 않겠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이 됐던 곳이어서다. 영화는 이 카사블랑카에서 단 한 컷도 찍지 않았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여행자의 로망이 되었다.

탕헤르에서 일찍 출발해도 점심 때 닿기 때문에 제일 처음 들르는 곳이 페트로민이다. 페트로민은 주유소이자 체인식당의 이름.양고기 숯불구이를 먹는다. 24시간 전에 이슬람식으로 잡은 양고기며 쇠고기를 정육점에서 사서 옆에 넘기면 구워주는 방식이다.

고기를 굽는 비용,식탁 세팅 비용을 따로 낸다. 샐러드와 빵,음료수도 따로 사 먹는다. '따진'이라고 부르는 질그릇에 고기를 구워 맛이 담백한 게 물리지 않는다.

페트로민에서 도시 중심까지는 20㎞.모로코의 경제수도답게 길 양옆에는 하얀색 집들이 깨끗하다. 부자동네라는 앙파힐은 모든 사람이 들어가 살고싶어 하는 곳.옛날 이곳의 하얀집을 본 포르투갈 상선 선원들이 '카사'(집) '블랑카'(하얀)로 이름지었다고 한다.

하산2세 사원이 카사블랑카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의 사원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이라고 한다.

일반인이 관광할 수 있는 이슬람 사원으로는 하산2세 사원이 제일 크다. 메카와 메디나에 있는 사원은 성지순례객 이외의 일반 관광객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원은 현 국왕의 부친인 하산2세의 60세 생일을 기념해 건설됐다. 1983년 첫 삽을 떠 10년간의 대역사 끝에 완공됐다. 멀리서 보면 바다에 떠 있는 듯한 하산2세 사원은 그 규모가 엄청나다. 하나가 우뚝한 미나레트의 높이는 200m.예배당도 전면 너비 200m,폭 60m나 된다. 예배당의 수용 인원은 2만명,사원 앞 광장에 8만명이 모일 수 있으니 10만명이 한꺼번에 메카를 향해 기도할 수 있는 셈이다. 예배당의 지붕도 개폐식이다. 여름에는 지붕을 열어 햇빛이 들어오게 한 다음 기도를 한다.

규모도 규모려니와 미나레트와 예배당,광장의 부속 건물과 바닥 등이 모두 모로코산 대리석으로 치장됐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 큰 사원이 깔끔하고 화려해 보이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구석구석 정교한 장식도 눈을 의심케 한다.

그리고 한가지 더.하산2세 사원의 미나레트를 배경으로 한 붉디붉은 일몰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노을이 질 때면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절실히 기도하는 것처럼 그 분위기가 성스러워진다. '카사블랑카'가 흑백영화가 아니었더라면 이 일몰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장면이 들어갔을 게 틀림없다.

탕헤르·카사블랑카=글/사진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여행 TIP
모로코의 정식 국명은 모로코 왕국이다. 아프리카 북서부에 위치해 있다. 스페인 철수 이후 미승인 국가로 남아 있는 서사하라,그리고 알제리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부와 서부는 지중해와 대서양에 면해 있다. 국토 면적은 서사하라를 제외하고 44만7000㎢.인구는 3500만명으로 99%가 이슬람교도다. 아랍인 60%,베르베르인 36%다. 수도는 대서양에 면한 라바트.

국왕의 권한이 막강한 입헌군주국이다.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했다. 1인당 GDP는 4500달러.한국보다 9시간 늦다. 우리나라의 220V 전기기구를 어댑터 없이 쓸 수 있다.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우기는 11~4월로 온난다습하다. 평균 15도.건기는 5~10월로 고온 건조하다. 평균 28도.요즘은 카디건 하나 정도 걸치면 된다. 밤에는 쌀쌀해 두툼한 점퍼를 준비하는 게 좋다. 통화 단위는 디람.호텔에서 환전할 때는 1유로에 11디람 선.3개월 이내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다.

카타르항공(02-3708-8571,www.qatarairways.com/kr)이 도하에서 카사블랑카행 항공편을 운항한다. 보통 스페인과 묶은 패키지 일정으로 모로코를 여행한다. 스페인 타리파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모로코 탕헤르로 들어간다. 탕헤르에서 카사블랑카까지 버스로 4~5시간 걸린다. 타리파에서 출발하는 탕헤르 여행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다. 페가수스코리아(02-733-3441)가 하나투어를 통해 스페인+모로코 여행 프로그램을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