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속 재판했더니…범죄자 2707명 도망쳐
박모씨(26)는 지난해 7회에 걸쳐 현금과 음식 등을 훔친 혐의로 체포됐다. 절도 전과도 있고 주거도 일정하지 않아 검찰에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사안이 중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영장이 기각된 직후 박씨는 그대로 도주했고 결석재판(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재판)으로 징역 10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검찰은 그러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형을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형 선고부터 5년 후인 2014년까지 검거하지 못하면 박씨는 형의 집행을 아예 면제받게 된다.

불구속 재판이 확산되면서 형사재판 과정이나 형 선고 후에 도주 · 잠적하는 '자유형 미집행자'가 늘고 있다. 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05년 1525명이던 연간 자유형 미집행자는 매년 증가해 지난해에는 거의 두 배 수준인 2707명으로 늘었다. 검찰 검거 인원도 같은 기간 1010명에서 2010명으로 증가했지만 미집행자를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처벌받지 않고 대낮에 버젓이 활보하는 범죄자 수가 과거 연간 400~500명에서 지난해 700명 가까이 늘었다.

이는 무엇보다 불구속 재판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2009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00년 46.1%였던 구속재판 비율은 2005년 26.2%,2008년에는 14.4%로 가파른 하락세를 나타냈다. 불구속 기소가 무죄추정주의를 지키고 인권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지만 반대로 도주범을 늘리는 부작용도 크다는 지적이다.

이상철 대검찰청 공판송무과장은 "불구속 상태에 있는 피의자들은 일단 기소가 되면 도주를 생각하게 된다"며 "공판에 들어와 분위기를 파악한 뒤 잠적하거나 아예 공판에 안 들어 오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특히 사기,횡령,배임 등 재산 범죄자들의 불구속 재판 중 도주가 많은 것으로 분석했다. 이들은 도피 자금을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는 데다 재판에서 지면 범죄 피해액을 모두 물어줘야 해 유죄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검찰은 각 지검 자유형 미집행자 검거 인력이 3~4명에 불과하고 일선 지청은 1명이 맡고 있는 곳도 많아 검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해외로 도피할 경우에는 검거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 과장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재판을 받아도 출국금지를 하기가 힘들다"며 "외국에서 함부로 공권력을 행사할 수도 없어 해외 도피자에 대해서는 현지 대사관 직원을 통해 자진 귀국을 유도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설명했다. 도주한 미집행자는 형이 선고된 때부터 '3년 이상의 징역 · 금고'는 10년,'3년 미만의 징역 · 금고'는 5년,벌금은 3년이 지나면 형 집행이 면제되기 때문에 죄를 짓고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검찰은 해외 도피 인원에 대해서는 형 시효가 정지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정부에서 미집행자 검거 인원을 늘려주고 검거장비 등 확보를 위한 예산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장은 "자유형 미집행자에 대한 감청을 폭넓게 허용하는 등 검거를 위한 입법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