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판매회사 이동제'가 시행된 지 1주일 여가 흘렀다. 판매사 이동제는 휴대전화 이용자들이 이동통신 회사를 옮기는 것처럼 펀드투자자들이 이미 가입한 펀드의 판매사를 갈아탈 수 있는 제도다. 기존에는 펀드판매사를 옮기려면 펀드를 환매하고 다른 판매사에 재가입해야 했지만,환매절차나 추가비용 부담 없이 판매사를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제도는 투자자들의 선택의 기회를 보다 넓혀 준다는 측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1일까지 6거래일 동안 300억원 정도의 펀드가 판매사를 옮겼다. 시행 첫날 100여건에 그쳤던 이동건수는 이제 일평균 200여건을 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인 지각 변동은 나타나지 않는 분위기다. 시행 초기 판매사들이 서비스 차별화를 들고 나왔지만,가장 피부에 와 닿는 수수료나 보수 측면에서 별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동이 미진한 이유로 시행 초기여서 좀 더 진행 상황을 지켜 보자는 생각에다 번거로운 절차를 감수하고라도 옮겨야 할 만큼 판매사 간 차별이 크지 않다는 점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주거래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원하는 펀드를 가입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여러 곳에 나눠 가입했던 투자자들은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받기 위해 1~2개사로 모을 것을 권하고 있다.

◆은행에서 증권사로의 이동 많아

판매사 이동제 엿새 만에 판매사를 옮긴 펀드 규모는 270억원을 넘어섰다. 3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펀드판매사 이동제가 시행된 1월25일부터 지난 1일까지 엿새 동안 판매사를 이동한 펀드규모는 총 275억원으로 집계됐다.

시행 첫날인 25일은 13억원에 그쳤지만 26일 46억원,27일 53억원,28일 71억원,29일 52억원 등으로 나흘 동안 하루 평균 50억원을 웃돌았다. 이동 건수와 펀드 수는 하루 평균 200여건,60~70개에 이른다. 판매사 이동 건수는 지난달 25일 103건에 머물다 26일 229건으로 증가한 후 꾸준히 200건을 넘어 총 1361건에 달하고 있다.

판매사를 옮긴 펀드수도 25일 35개에서 26일 63개,27일 64개,28일 63개,29일 70개,1일 61개 등으로 늘어났다.

첫 이틀간 판매사를 이동한 펀드투자자들 중 대부분은 은행이나 보험사에서 증권사로 판매사를 갈아탄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판매사를 옮긴 13억원 가운데 5억원가량은 은행에서 증권사로 판매사를 옮겼고,나머지 대부분은 증권사에서 다른 증권사로 이동했다. 이동 규모가 46억여원으로 확대된 26일도 은행에서 증권사로 판매사를 옮긴 경우(25억원)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증권업계와 은행 간 고객 빼앗기와 수성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래도 펀드 모으면 낫다

펀드 이동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금융투자협회 공시사이트(dis.kofia.or.kr)를 통해 이동가능 판매사와 수수료를 비교한 후 기존 판매사를 찾아 '계좌정보확인서'를 받급받고 옮겨갈 판매사에 가서 이전절차를 마무리하는 데는 최소 1~2시간이 걸린다. 시행 초기인 만큼 사전에 기존 판매사와 옮길 판매사에 전화로 관련 내용을 확인하는 게 필수다.

이전할 판매사에서는 펀드를 신규 가입하는 것과 같이 '표준 투자권유준칙'의 절차를 따라야 한다. 고객 성향 파악을 통해 투자에 적합한 펀드인지를 확인한 후 '일반투자자 투자정보 확인서' 기재,상품설명 및 가입 결정 등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아직 판매사 간 수수료나 서비스 차별화 등을 경험하지 못한 투자자들 입장에서 귀찮은 측면도 있다. 실제 펀드수수료나 보수는 아직 거의 차이가 없다. 펀드판매사 이동제 도입 이후 펀드 관련 수수료나 보수를 내린 판매사는 전무하고 제도 시행 전 판매수수료를 내린 펀드 수도 65개에 그친다. 이는 펀드이동제 도입으로 판매사를 옮길 수 있는 전체 공모펀드 2226개의 2.92%에 불과한 것이다. 펀드 판매수수료를 내린 판매사 역시 전체 61개사 중 3개뿐이다.

수수료가 인하된 펀드 65개 중 키움증권이 62개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투자증권 2개,푸르덴셜투자증권 1개 정도다. 금융감독원이 이번 이동제에 키움증권을 배제한 탓에 사실상 수수료가 차이 나는 판매사는 고작 3개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일단 자신이 가입한 펀드들을 한두 개 판매사로 모으는 데 발품을 팔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이번 기회에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경험하고 자신의 투자 스타일을 점검한 후 펀드 포트폴리오(투자군)를 새롭게 짜볼 만하다는 얘기다. 한번 이동하면 3개월 동안은 다시 옮기지 못하는 만큼 1년에 많으면 4번까지 이동할 수 있다.

배성진 현대증권 수석연구원은 "판매사를 여러 군데 나눠 투자하다 보니 비슷한 스타일의 펀드에 중복가입해 무늬만 분산투자인 경우가 종종 있다"며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줄 수 있는 판매사를 골라 펀드를 모아 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대정 대우증권 연구위원도 "우선 종합적인 자산관리 능력을 기준으로 판매사 이동제를 활용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또한 펀드를 한두 군데 판매사에 모아 놓으면 나중에 판매사 간 수수료나 보수 인하가 본격화될 때 또 다른 판매사로 쉽게 옮길수 있는 데다 판매사들도 이를 의식해 수수료 인하에 적극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