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핵심 반도체 기술이 협력업체를 거쳐 경쟁업체인 하이닉스반도체에 무더기로 유출된 혐의가 드러난 사건은 충격적이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협력사인 반도체 장비업체 A사 부사장 등은 지난 2005년 3월부터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의 제작공정 등을 담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 95건을 빼돌렸고 이중 13건을 하이닉스 측에 넘겼다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사건은 그동안 있어 왔던 기술 해외 유출 사건과는 달리,굴지의 국내기업들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협력업체가 개입된 새로운 형태의 기술유출이라는 점에서 여타업종에도 경각심을 갖게 한다.

사실 기술 유출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경쟁업체들이 이를 입수해 추격한다면 기술 격차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된다. 만일 해외업체와의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세계 1위를 지켜온 한국 반도체 산업의 지위 또한 단숨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쏟아부은 땀과 정성이 하루아침에 도루묵이 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협력업체를 통한 이 같은 형태의 기술유출이 비단 반도체 분야뿐만 아니라 한국이 세계 선두를 달리는 휴대폰 · 조선산업 등에서도 시도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미 이들 분야에서는 핵심 기술을 빼돌리려는 시도가 수 차례나 적발됐고,중소 벤처업계에서도 이런 일은 끊이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동차 분야만 해도 현대 · 기아차의 자동변속기 기술이 중국으로, 쌍용차의 디젤 하이브리드 기술이 상하이차로, GM대우의 라세티 설계도면이 러시아로 각각 넘어간 혐의가 포착(捕捉)된 바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핵심 기술에 대한 보안관리를 한층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 USB 등을 이용한 기술 빼돌리기를 철저히 차단할 수 있도록 보안 체계를 대폭 강화함은 물론 이번 사건이 시사하듯 협력업체에 대한 관리도 더욱 치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고급 기술인력에 대해 합당한 대우를 함으로써 그들의 이직을 막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정부도 기술 훔치기는 중대범죄로 간주해 엄중처벌하는 등의 방법으로 경각심을 높여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