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볼커 룰'의 입법 여부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JP모건체이스는 볼커 룰을 의식해 기업 인수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원 금융위원회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초강력 금융규제책인 볼커 룰의 타당성을 따지기 위해 2일 첫 청문회를 열었다. 청문회에는 볼커 룰을 주도한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생자문위원장(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닐 울린 재무부 부장관이 참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름 붙인 볼커 룰은 은행의 무분별한 투기적 '자기자본 거래(Proprietary Trading)'를 규제하자는 게 핵심이다. 자기자본거래는 은행이 고객 예금이 아닌 자기자산이나 차입금으로 채권과 주식,각종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면서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행위다. 볼커 룰은 특히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예금자 보호를 받는 은행이 예금고객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투기적 자기자본거래를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상업은행들이 투자은행들처럼 자기자본거래에 나섰다간 금융산업 전체를 위기에 밀어넣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자기자본거래를 하는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를 소유 · 운용하거나 투자하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대형 은행들의 투기적 거래가 줄어 주식 원유 등의 랠리가 둔화되고 위험자산보다는 안전자산이 더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달러 자금을 빌려 고수익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것)가 감소해 신흥국으로의 달러 유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자기자본거래의 범위를 놓고 볼커와 의원들 간 설전이 거셌다. 의원들은 은행이 거래 활성화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장에 개입해 채권과 주식을 인수하는 시장조성 업무와 자기자본거래 간 경계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볼커 위원장은 "은행들이 자기자본거래의 의미를 더 잘 알고 있다"고 맞받았다.

볼커는 미국 내에서는 4~5개의 대형 상업은행,세계적으로는 20여개의 은행이 자기자본거래에 대규모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골드만삭스 씨티그룹 모건스탠리 등을 대표적 금융사로 꼽았다. 이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업은행을 갖는 은행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FRB의 감독을 받고 있으며 대규모 구제금융도 받았다.


볼커 룰에 회의론을 제기한 쪽은 주로 공화당 의원들이었다. 밥 코커 의원은 "2008년 위기 때 붕괴되거나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 가운데 자기자본거래를 한 은행지주회사는 한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요한스 공화당 의원은 "볼커 룰이 일찍 도입됐다면 AIG나 리먼브러더스와 같은 부실을 막았을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볼커 위원장은 이에 "볼커 룰은 상업은행들이 대출과 예금 등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하라는 의도"라며 "국민 혈세가 투입된 은행들에 제2의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볼커 룰이 도입될 경우 은행들이 자기자본거래를 중단하거나 은행 면허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면서 "내가 제2의 위기가 닥칠 때까지 살아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말 안 듣다가는 내 영혼이 의원들을 따라다닐 것"이라고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볼커는 볼커 룰이 효과를 내려면 국제적인 공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볼커 룰은 미국에 지점을 둔 외국계 은행을 포함해 미국 내에서 영업하는 모든 은행에 적용된다고 덧붙였다. 울린 부장관은 주요 20개국(G20)이 볼커 룰과 유사한 규제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JP모건체이스가 미국 셈프라에너지와 영국 스코틀랜드로열뱅크(RBS)의 합작사인 RBS셈프라의 인수건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행보는 볼커 룰의 영향이 미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민주당 소속인 크리스토퍼 도드 금융위원장은 때늦은 감이 있다고 했으나 볼커 룰에 강력한 지지를 표명했다. 공화당 의원들도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리처드 셸비 공화당 의원은 혼란스럽지만 검토해 보겠다고 청문회 직후 언급했다. 상원 금융위는 4일 오전 JP모건체이스와 골드만삭스 임원들을 불러 2차 청문회를 열 예정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볼커 룰(Volcker Rule)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달 월가 대형 은행의 규모와 투자 범위를 제한하는 금융규제안을 발표하면서 이를 '볼커 룰'이라 소개했다.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위원장의 제안이 규제안에 대폭 반영됐기 때문이다. 볼커는 대마불사에 따른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려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해 금융사들의 무분별한 고위험 투자와 대형화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