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720-730' 무슨 숫자냐고요?

국내 라면 제조업체들인 삼양식품, 오뚜기, 농심이 각각 주력으로 삼는 120g 봉지면인 삼양라면, 진라면, 신라면의 희망소비자가격(단위 원) 입니다.

이들 제품은 지난달 말 까지만 하더라도 전부 값이 750원으로 동일했지요.

특히 이들은 40년이 훨씬 넘는 국내 라면역사 속에서 거의 같은 가격 구조를 갖고 있었고요.

지금까지 이 라면들의 가격은 시장 1등 제품(주로 신라면)이 먼저 '인상'한 뒤 시차를 두고 후발제품들이 같은 값으로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라면 값은 따라서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동맹'체제가 구축돼 있었던 셈입니다.

(물론 라면업체들이 값을 올리면서 상호 협의를 했다면 이는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로 인해 법적 제재가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겉으론 부정행위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이처럼 40여년 굳건하게 유지돼 온 라면값 동맹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위에서 적시한 숫자처럼 라면회사들이 주력라면의 값을 '제각각' 매긴 탓입니다.

이는 라면 값이 결정된 기존 관행의 철저한 파괴에서 비롯합니다. 이 파괴는 라면 효시업체이지만 현재는 농심에 밀려 2등에 머물고 있는 삼양식품이 주도했고요.

삼양식품은 지난달 28일 삼양라면의 값을 750원에서 700원으로 50원 내린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라면의 주원료인 밀가루 값의 인하를 반영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서민물가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는 매우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웠고요.

삼양식품의 이 같은 선언은 국내 라면 역사에서 여러가지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는 평가입니다.

1963년 10원으로 시작해 항상 '상승'만 거듭해 온 라면 값이 사상 처음으로 내리는 경험을 하게 만든 게 첫 번째 기록으로 꼽힙니다.

라면 값은 정부 통제를 받아 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기존 가격이 유지된 적은 있지만 값이 내려간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봉지 주력라면의 경우 중량이 120g으로 고정화(일종의 표준화)돼 있어 스낵류처럼 중량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방법을 동원할 수 없다는 것도 그동안 라면 값의 인하 경험을 못하게 했다는 분석입니다.

두 번째 기록으론 라면사상 가격 주도권을 1등업체(농심)가 아닌 2등업체(삼양식품)가 행사했다는 게 지적됩니다.

아시다시피 국내 라면 시장은 70% 안팎의 점유율을 가진 농심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농심 신라면은 한품목이 전체 시장에서 24%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요.)

때문에 농심이 신라면의 가격 인상을 발표하면 삼양라면, 진라면 등이 따라갔습니다.

(1980년 후반 이전 1위이던 삼양식품 시절에도 마찬가지 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2등업체인 삼양식품의 이번 라면가격 인하 선도는 각사 주력라면 가격을 '제각각'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는 등 국내 라면시장에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특히 1위업체 농심에 미친 충격파가 컸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농심은 삼양식품의 가격 인하 발표이후 닷새가 지난 뒤인 어제(2월 2일) 비로소 '신라면'값을 750원에서 20원 낮춘 730원으로 결정했다는 걸 발표할 정도 였습니다.

그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것으로 판단되는 대목입니다.

30원 낮춘 진라면의 오뚜기도 마찬가지로 보이고요.

삼양식품이 48년간 유지돼온 기존 관행을 파괴하며 선도한 이번 라면값 인하는 라면업계가 앞으로 펼칠 무한경쟁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경쟁을 가속화하면 할 수록 소비자들은 부담이 줄어드는 즐거움을 맛볼 것이고요.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