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위생' 키워드로 근대화 역사 짚어
100년전 진단서·사진도 풍성…동양·서양 의학의 갈등·논쟁
1884년 12월4일 오후 6시께.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홍영식 등 개화파는 우정국 축하연을 이용해 명성황후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때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익이 칼에 찔려 사경을 헤매자 독일인 외교고문 묄렌도르프는 알렌에게 민영익의 치료를 맡겼다.
알렌은 칼에 찔린 상처를 깨끗이 소독하고 꿰맨 후 붕대를 감았다. 머리의 상처 부위는 명주실로 봉합해 지혈했다. 알렌은 이런 식으로 모두 27곳을 밤새 꿰매고 상처마다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았다. 치료한 지 4일 만에 민영익이 소생하자 한의사들은 놀랐다. 이 같은 외과 치료는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통해 서양의학의 탁월함을 입증해 보인 알렌은 이듬해 1월 민영익을 통해 서양식 병원 설립을 조선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이것이 바로 국내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자 근대식 병원이었던 제중원(濟衆院) 설립의 기초가 된 알렌의 병원 설립안이다.
《사람을 구하는 집,제중원》은 제중원을 중심으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서양의학의 국내 토착화 과정을 짚은 책이다. 해부학을 전공한 연세대 의대 해부학교실의 박형우 교수와 역사학을 전공한 연세대 의사학과(醫史學科) 박윤재 교수가 18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서양의학의 수용 과정을 정리하면서 서양의학이 어떻게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해부한다.
고종의 윤허로 병원 설립은 빠르게 진행돼 1885년 4월10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서울 재동(현 헌법재판소 구내)에 개원했다. 제중원은 '사람을 구제하는 집'이라는 뜻으로,'논어'에 나오는 '박시제중(博施濟衆 · 백성에게 널리 인정을 베풂)'에서 따왔다.
저자들은 제중원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서양문물 도입을 추구했던 개화의 갑신정변은 실패로 끝났지만 칼에 찔린 민영익은 서양의사 알렌이 구했다. 정변에 참여한 홍영식은 참살당했지만 그의 집은 제중원으로 개조됐다. 또 정변의 현장을 지휘했던 서재필은 미국으로 망명해 한국인 최초의 서양의사가 됐다.
저자들은 또 의학이라는 주제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읽어낸다. 가령 개화파의 개혁정책 중 하나였던 '위생'은 한국 근대화의 키워드였다. 위생적인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었고,근대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의학의 도입이 새로운 인간형을 탄생케 했다는 것이다.
또한 서양의학이 들어오면서 의학과 의사의 위상도 달라졌다. 의학은 더 이상 중인의 직업이 아니었고 의사는 최고의 직업이 됐다. 전통의학인 한의학이 주류의학의 자리를 서양의학에 내주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저자들은 이 같은 시각에서 조선이 서양의 새로운 의학을 만나는 과정,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갈등과 동서의학 논쟁,일제의 일방적인 의료정책과 이에 맞선 의사들의 저항,제중원 출신 의사들의 활약상과 돌림병에 맞선 노력 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알렌이 발행한 한국 최초의 근대 서양식 진단서와 제중원 1차 연도 보고서 등 문서자료와 사진도 풍성하게 실려 있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