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 달러 환율이 급등락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역외의 대규모 달러 매도로 1110원대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유럽 국가들의 재정 건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한 달도 안 돼 달러당 1170원대까지 상승했다. 한때 환율이 1100원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지금은 하락하더라도 1100원 이하는 힘들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달러 가치 6개월 만에 최고

최근 환율 상승은 대외적인 원화 약세(환율 상승)요인이 대내적인 원화 강세(환율 하락)요인을 압도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경제성장률,경상수지,재정 건전성 등 한국 경제의 기초 여건만 놓고 봤을 때는 원 · 달러 환율이 하락해야 하지만 해외 불안 요인이 불거지면서 환율이 상승했다.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확산되면서 유럽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위기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경제가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로 접어들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로 대변되는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유로화 등 6개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79를 넘어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국 경제의 기초 여건에 대한 기대감도 약해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치보다 낮은 0.2% 성장(전분기 대비)에 그친 탓이다. 난방용 석유 수입 증가 등 계절적 요인이 원인이기는 했지만 1월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것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국이 긴축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국이 중국 경제의 성장에 따른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줄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은행의 애널리스트는 "원 · 달러 환율이 급등할 만한 이유가 없어 보이지만 글로벌 달러 강세와 세계 경제의 불안 요인을 모두 극복하고 환율이 하락할 것으로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엇갈리는 전문가 전망

환율이 지난해 말 종가(1달러=1164원)보다 높은 수준으로 오르자 시장의 추세가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진우 NH투자선물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작성한 외환시장 분석 보고서에서 "앞으로 환율 상승이 추세가 될 것이고 환율 하락은 조정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1년간 글로벌 금융시장을 지배했던 달러 약세와 주식 및 원자재 가격 강세의 흐름이 정반대로 돌아서고 있다"며 "원 · 달러 환율의 하락세도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팀장은 "장기 추세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중기적인 환율 하락세는 마무리됐다"며 "큰 숫자가 바뀌는 1200원이 장기 추세가 결정되는 고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여전히 많다. 홍승모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차장은 "환율 하락의 장기 추세가 꺾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며 "여전히 하락은 추세이고 상승은 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환율의 장기 추세를 점칠 수 있는 기준점으로 1187원을 제시해 단기적으로 1200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1187원은 지난해 말 환율이 일시적으로 급등했을 때 기록했던 고점"이라며 "1187원을 넘어설 경우 시장의 심리가 환율 상승 쪽으로 쏠리면서 1200원대도 찍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도 환율의 장기 하락을 점쳤다. 정 수석연구원은 "환율 상승 요인과 하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하락 요인이 더 크다"며 "연 평균 환율이 1100원이 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차익 노리는 투자는 위험

전문가들은 1160~1180원을 단기 등락 범위로 보고 거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팔아야 할 달러가 있다면 1180원 근처에 갔을 때 미련 없이 팔고 사야 할 달러가 있다면 1160원대가 됐을 때 더 기다리지 말고 사라는 것이다. 정미영 팀장은 "환율이 하방경직성을 보이고 있어 하락보다는 상승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며 "환율의 120일 이동평균선인 1178원이 1차 저항선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펀드에 투자할 때는 단기적으로 환율이 상승하더라도 환헤지형 펀드를 선택하라는 의견이 많다. 김성동 신한금융투자 강남명품 PB센터장은 "투자 수익과 환차익을 한꺼번에 노리는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환헤지형 펀드를 통해 환율 변수는 고정시켜 놓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그는 "환헤지형 해외 펀드는 원 · 달러 환율 상승 시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해외 펀드에서 손실이 날 경우 환차익으로 만회할 생각을 하지 말고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손실을 줄이는 것이 현명하다"고 강조했다.

김창수 하나은행 아시아선수촌 PB센터 팀장도 "1년 이상의 긴 시간을 두고 보면 환율이 현재 수준에서 큰 폭으로 상승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환헤지형 펀드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