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리콜] 진실 숨긴 미쓰비시 추락…'신속한 리콜' 존슨&존슨은 전화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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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1.2002년 일본 요코하마 도로를 달리던 미쓰비시 트럭의 타이어가 갑자기 빠져버렸다. 타이어는 보도를 걷던 가족을 덮쳤다. 29세의 여성이 사망하고 두 아들이 다쳤다. 미쓰비시는 자동차 결함을 부정했다. 양심에 가책을 느낀 미쓰비시 직원의 제보로 이 회사가 수년간 트럭 클러치의 오작동을 은폐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회장을 비롯한 임원 7명이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존립 위기를 겪은 미쓰비시는 2류 브랜드로 전락했다.
#2.2000년 IBM은 자사 노트북 컴퓨터에서 어댑터 과부하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상 제품은 1998~1999년에 판매된 '싱크패드' 시리즈 중 일부.전 세계에서 팔린 32만대의 제품 중 문제가 발생한 제품은 단 9대였다.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었고,확률상 0.0003%에 불과했다. 하지만 IBM은 관련 사실을 공개한 뒤 전 모델에 대해 자발적인 리콜을 실시했다. 소비자 호평을 얻은 것은 물론이다.
리콜은 기업에 커다란 짐이다. 어떤 식으로든 품질 문제가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신뢰도 추락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초기 대응을 잘하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과거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리콜은 '양날의 칼'과도 같다. 미쓰비시 파이어스톤 등은 위기 대응에 실패해 오점을 남긴 대표적인 기업이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도요타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존슨&존슨과 일본 산텐제약 등은 리콜 위기를 슬기롭게 풀어간 모범 사례로 꼽힌다.
◆초기 대응 실패하면 더 큰 위기
1999년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한 중학교에서 코카콜라를 마신 학생 33명이 복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당시 유럽을 방문 중이던 더글러스 아이베스터 코카콜라 최고경영자(CEO)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벨기에 보건부 장관의 면담 요청을 거절하고 미국 본사로 복귀했다.
벨기에 정부는 즉각 문제가 된 코카콜라에 대해 강제 리콜 명령을 내렸다. 자국 내에선 아예 코카콜라를 팔지 못하도록 했다. 본사의 판단은 벨기에 정부 및 소비자들의 인식과 여전히 큰 차이가 있었다. 자체 조사 결과 벨기에의 한 공장에서 코카콜라 캔을 담았던 나무 상자에 방부제가 묻어 있었다며,코카콜라의 잘못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진심을 담은 사과는 물론 보상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코카콜라 사태는 유럽 및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됐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룩셈부르크 정부도 코카콜라에 리콜 명령을 내렸다. '콜라 공포증'이 생겼고,가장 큰 자산인 '브랜드 가치'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그 해 매출은 30% 이상 급락했고,아이베스터 CEO는 해고됐다.
◆리콜 대처 잘하면 '신뢰기업'
결정적인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은 사례도 적지 않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존슨&존슨이 생산하는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7명이 사망했다. 조사결과 정신병자가 시카고에서 판매되는 타이레놀에 청산가리(시안화칼륨)를 집어넣는 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즉각 시카고 지역의 타이레놀에 대해 리콜을 명령했다.
존슨&존슨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광고를 통해 "원인이 완전히 규명될 때까지 복용하지 말라"는 자체 소비자 경고를 발령했다. 제조 과정을 언론에 공개하는 한편 시카고뿐만 아니라 미국 내 모든 제품을 수거하는 극약 처방도 내놨다. 매출액의 5% 이상인 2억4000만달러를 들여 3100만병의 제품을 폐기 처분했다. 임원들은 언론에 나와 수차례 사과하고 소비자 이해를 호소했다.
35% 수준이던 타이레놀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사건 발생 후 8%대까지 떨어졌지만 이듬해 다시 1위로 복귀했다. 1985년 타이레놀 부문의 이익만 1억3000만달러로,전체 이익의 20%를 넘는 최대 수익원이 됐다. 마케팅의 기적으로 불리는 '타이레놀의 컴백' 스토리다.
◆정공법이 유일한 해법
위기가 닥쳤을 때 문제점을 빨리 시인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는 '정공법' 만이 사태를 키우지 않는 비결이란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경연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무결점을 자랑하는 기업이라도 품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결함이 발견됐을 때 남을 탓하지 말고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최대한 빨리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소 짜임새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짜놓고 위기관리책임자에 대한 권한을 강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품질뿐만 아니라 생산 · 개발 · 마케팅 · 구매 등 전 부문이 위기대응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협력업체나 해외 공장은 사각지대에 놓일 우려가 있는 만큼 교육 및 소통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 리콜
소비자의 생명 및 신체에 위해를 끼칠 만한 제품 결함이 발견됐을 때 제조업체가 결함을 시정하거나 교환,보상해주는 소비자 보호제도다. 대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공표하고,해당 소비자에게 직접 편지를 발송해 적정 조치를 받도록 권고한다. 기업이 시정을 거부하면 정부가 리콜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