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경기부양의 '덫'에 걸렸다. 각국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어 부양책을 쓴 덕분에 세계경제는 예상보다 빨리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지만 경기부양을 위해 마구 늘린 나라빚이 '재정적자' 위기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의 공동 설립자인 빌 그로스는 4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부채 문제의) 강도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와 같은 수준은 아니겠지만 분명 확대될 것이며 비슷한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CDS 가산금리 급등

세계경제는 이날 그리스에서 점화된 연쇄 재정위기 공포로 크게 요동쳤다. 포르투갈의 국채 부도 가능성을 반영하는 신용부도스와프(CDS) 가산금리는 하룻새 0.32%포인트 뛰며 역대 최고치인 2.26%까지 치솟았다. 스페인과 그리스의 CDS도 각각 0.17%포인트와 0.24%포인트 급등한 1.64%와 4.15%를 나타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간신히 경기후퇴에서 벗어나 숨 좀 돌리려는 순간에 유럽이 (재정적자 문제로) 경기회복에 발목을 잡히면서 글로벌 경기 슬럼프가 장기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의 12.7%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2012년까지 2.8%로 낮추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은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그리스는 공무원 임금을 비롯한 각종 지출을 줄이고 수입은 늘려 올 한 해 재정적자를 100억유로(GDP 대비 4%포인트) 감축할 계획이다. 그러나 시장은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올해 잘해야 12.2% 수준으로 지난해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그리스가 재정적자 위기를 초기에 진화하지 못한다면 '리먼 스타일 쓰나미'가 유럽연합(EU)의 경계를 넘어 전세계에 여파를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스발 불안감이 전 유럽을 휘감으면서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그리스 재정적자 문제로 유로존 경제가 흔들릴 우려는 없다"고 긴급 진화에 나섰다. 그렇지만 그리스에 대한 구체적인 구제금융 지원 계획을 밝히지 않으면서 오히려 시장 불안감을 확산시켰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또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이 어떤 형태로든 그리스를 지원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문했으나 전망은 불투명하다.

◆'돼지(PIGS)',도마 위에 오르다

이번 공포는 '피그스(PIGS) 국가'로 불리는 포르투갈 아일랜드 ·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을 중심으로 불똥이 번지는 게 특징이다. 'PIGS 국가'가 유럽발 경제위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이유는 지난해 경기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푼 탓에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었으나 경제기반이 탄탄하지 못해 국가신용등급이 잇따라 낮아지고 국가부도 위기까지 거론되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좌파 사회당 정부 집권 후 정정불안이 지속된 포르투갈은 재정적자가 GDP 대비 9.3% 수준까지 커지면서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잇따라 재정적자를 우려하는 경고를 내보냈다. 여기에 당초 5억유로 규모의 1년 만기 국채를 발행하려던 계획이 수요 급감으로 3억유로만 발행하는 데 그치면서 경제위기의 불을 지폈다. 지난해 GDP 대비 11.4%로 재정적자가 급증한 스페인도 앞으로 3년 동안 500억유로(약 700억달러)의 공공 지출을 줄이겠다는 계획이지만 묘수가 없는 상황이다. 아일랜드도 GDP의 10.75%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떠안고 있어 언제 뇌관이 폭발할지 모르는 상태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