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의 의사에 따라 가입 · 탈퇴가 가능한 오픈 숍(Open-shop) 제도 시행,노조 간부의 전보를 포함한 노조의 인사권 개입 일절 배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단체협약을 체결.'

한국석유공사가 지난 5일 배포한 보도자료의 일부다. 처음 보도자료를 읽었을 땐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유공사가 공기업으로선 드물게 스스로 '철밥통'을 깬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기자가 석유공사 노무담당자와 노조 측에 확인한 결과 실상은 달랐다. 철밥통을 깨는 시늉은 했지만 실제로 깬 것은 아니었다. 우선 '가입 · 탈퇴가 가능한 오픈 숍'이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 노조 가입은 여전히 의무다. 석유공사에 입사하면 무조건 노조에 가입해야 한다. 탈퇴가 허용된 것은 맞다. 하지만 원한다고 무조건 탈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노조 규약에 따라 중앙집행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오픈 숍'이란 말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노사는 입장차를 보였다. 사측 관계자는 "탈퇴를 허용했으니 실질적으로 오픈 숍을 도입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노조 측은 "완전한 오픈 숍은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건데 (보도자료가)얼렁뚱땅 나간 거다. 사측에 항의했다"(감기만 석유공사 노조위원장)고 반발했다.

'노조 간부의 전보를 포함한 노조의 인사권 개입 배제'도 실질적인 효과를 따져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조합 간부 전보 시 조합의 사전동의' 조항이 삭제된 것은 맞다. 하지만 '조합 간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전보 발령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살아 있다. 발령낼 일이 없으니 사전동의 조항은 사실 있으나마나다.

정부는 작년부터 공공기관 기관장 평가 때 단협 개정 등 노사관계 선진화 항목의 배점(100점 만점)을 15점에서 20점으로 높였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 노조에 휘둘리거나 과도한 직원 복지에 예산을 낭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후 공공기관들은 단협 개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석유공사의 이번 단협 개정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석유공사의 노사관계 선진화 의지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꿈쩍도 하지 않는 다른 공공기관보다는 낫다. 다만 노사관계 선진화가 혹시라도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생색내기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주용석 경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