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업계의 불황이 깊어지면서 변호사의 사건 수임 건수가 1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변호사 한 사람당 평균 수임 건수가 2000년 41건 이후 줄곧 하향 곡선을 그리다 지난해 21건으로 거의 반토막 났다. 일부에선 불경기 타개를 위해 덤핑 수임료를 제시해 200만~300만원 정도만 받고 사건을 맡아주는 변호사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 달 1.7건 수임

8일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2000년 41건이던 변호사의 평균 경유 건수(수임료 25만원 이하와 소송가액 2000만원 이하의 사건 제외)는 2005년 34건으로 감소한 뒤 2009년 21건까지 떨어졌다. 경유 건수란 변호사들이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한 뒤 법원이나 검찰 등에 위임장을 제출할 때 소속된 지방변호사회를 거친 건수를 의미한다. 변호사들의 수임 건수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지표다. 경유 건수를 기준으로 봤을 때 작년 변호사들은 한 달에 평균 1.7건의 사건밖에 수주하지 못한 셈이 된다.

변호사들의 수임 건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사건 수는 거의 그대로인 반면 변호사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7년차인 한 변호사는 "예전에는 매달 10건씩 사건을 수임하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요즘은 5건 수임하는 변호사들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후배들 가운데는 한 달에 한 건도 수임하지 못하는 변호사도 많다"고 말했다.

◆착수금 하락

변호사 수임료는 평균적으로 10년 전과 차이가 없다. 사건 난이도와 소송가액 등에 따라 다르지만 착수금 500만원에 성공보수 10% 전후 수준이다. 물가가 꾸준히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수임료가 떨어진 것이다.

특히 수임료가 떨어진 사례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판 · 검사 경험 없이 연수원 졸업 후 바로 개업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저가 수임료로 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착수금 하한선이 계속 내려가고 있는 것.1990년대 후반만 해도 일반 민 · 형사사건의 경우 대략 500만원 선에서 착수금이 정해졌지만 최근에는 착수금이 300만원 이하인 사건들도 생겨나고 있다. 올해 연수원을 졸업하고 서울 서초동에 개업한 한 변호사는 "아직은 경력이 없기 때문에 기본 사건은 착수금 200만~300만원부터 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착수금+성공보수'로 구성됐던 변호사의 수임료 형태도 변하고 있다. 둘 중 하나만 받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예를 들어 교통상해 사건의 경우 착수금을 300만원 받거나,착수금 없이 승소했을 경우 성공보수로 배상금의 10~20%를 받는 형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예전에는 300만원 이하 사건이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터 300만원 밑으로 떨어진 것도 있다"며 "대부분 소송은 적어도 6~7개월간 진행되는데 한 달에 한두 번씩 법정에 가고 서면을 준비하면 사무실 유지비와 인건비도 안 나오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로펌도 불황을 타기는 마찬가지다. 민 · 형사 소송에서 1000만~2000만원을 하한으로 정해두고 그 이상의 사건들만 수임하는 것으로 알려진 로펌들도 최근 자존심을 꺾고 있다. 최근에는 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급 변호사가 착수금 400만원짜리 사건을 수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요즘에는 간단한 일은 수백만원에 맡기도 한다"며 "심지어 고객이 요구하면 100만원짜리 일도 한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