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해권 조선단지 '망치소리'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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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발주 취소·수주 급감…목포 등 서남권 경제 빈사상태
임금 체불로 직원들 외지 탈출 "발주취소 요건 까다롭게 바꿔야"
임금 체불로 직원들 외지 탈출 "발주취소 요건 까다롭게 바꿔야"
"신규 수주가 끊긴 지 오래돼 부렀소.지난해 선박발주가 다섯 건이나 취소되면서 하루아침에 식물회사로 전락해 부렀지라."
8일 찾은 목포 삽진산업단지 내 선박건조 전문업체 광성조선.이 회사의 김건영 대리(32)는 "경기가 호전될 것이라는 실낱 같은 희망 하나로 버티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버겁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남 목포 등 서남권의 중소형 조선산단이 빈사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2008년 말 국제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적 조선 불황으로 신규 수주 급감,발주 취소,선가 하락 등의 삼중고 속에 고사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광성조선은 해운업 침체로 지난해 선박 발주가 잇달아 취소되면서 300억~400억원대 후판과 엔진 등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심각한 자금경색에 빠졌다. 해상도크에 정박해 놓은 8700t급 및 1만4000t급 케미컬 오일 탱커도 선주사가 인수를 차일피일 늦추는 바람에 조선소 기능은 지난해 10월부터 올스톱됐다.
직원들은 월급을 구경해본 지 오래다. 작년 9월부터 서울에서 투자 유치에 매달리고 있는 김종복 사장이 일부 보내온 돈과 임금체불 업체에 대한 생활안정자금이 그동안 생활비의 전부였다. 한때 500여명에 이르던 직원은 생활고를 못견뎌 뿔뿔이 흩어지고 오갈 데 없는 30여명 정도가 조선소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 회사 근로자 박영호씨(47)는 "일부는 군산과 거제 등지로 옮겨갔지만 최근 저가를 앞세워 수주가 활발한 중국 다롄,웨이하이 등지로도 많이 빠져나간다"고 전했다.
인근 세광조선을 비롯한 다른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산단 입구에서 대형음식점 C농원을 운영하는 김민준씨(42)는 "지난해 조선 불황으로 근로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산단 전체가 유령산단이 된 듯한 느낌"이라며 "월 300만원하던 매출이 지금은 50만원도 힘겨운 상태"라고 밝혔다.
조선 호황에 힘입어 한때 국내 최대 규모 조선기자재단지로 부활했던 영암 대불산단도 요즘 다시 '애물단지 국가산단' 시절로 되돌아가는 분위기다. 산단 내 조선기자재 업체 220곳 중 일부라도 가동하고 있는 곳은 겨우 100곳 남짓이다. 선박블록업체인 동부중공업 삼육중공업 보성산업,크레인 제작업체인 대명중공업 등 부도업체가 속출하면서 우려했던 '부도 도미노'가 현실화되고 있다.
서남권 조선업체들은 선박을 발주하는 선주사들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광성조선 관계자는 "선주사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조선발주를 취소하면 선수금 지급보증(R/G)을 한 해상보험사들로부터 조선업체에 그동안 지급한 배값에 이자까지 붙여 돌려받는다"며 "정부가 나서서 발주 취소 요건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목포 상공회의소의 김광남 총무부장은 "조선업의 장기침체는 결국 지역경제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대출금 상환유예를 포함해 업종 전환 및 사업다변화,대형 국가사업 참여방안,금융권의 전향적인 R/G운용 등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목포=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