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4월 덴마크 군함이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항에 도착했다. 덴마크 교육부 장관이 상자를 하나씩 든 세 명의 해군을 대동하고 배에서 내리자 아이슬란드 총리가 영접했다. 상자 안에는 330여년 만에 반환되는 아이슬란드 고서적 '플라테이야르복'과 '레기우스 필사본'이 들어 있었다.

항구에서 아이슬란드 대학의 고서적 소장처로 가는 길에 카퍼레이드가 벌어졌고 거리에는 환영 인파가 넘쳤다. 반면 이들 책을 떠나보낸 덴마크 왕립도서관에는 반기가 걸렸다. 이후 1997년 7월까지 덴마크는 1772점의 필사본과 1400점의 문서원본,6000여점의 문서 사본을 아이슬란드에 보냈다. 600여년 식민통치 기간 덴마크가 아이슬란드에서 가져간 고문서 상당부분을 되돌려준 것이다. (김경임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일본이 빼앗겼던 '조슈번(長州藩)의 대포' 1문을 프랑스에서 환수한 때는 1984년이다. 일본 간몬 해협을 항해하던 미국 상선을 향해 조슈번이 1863년 5월 대포를 쏜 데 대해 미국 · 영국 · 프랑스 · 네덜란드 연합함대가 응징하면서 가져간 100여 문의 대포 중 하나를 돌려받은 것.프랑스는 '전리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버텼으나 진통 끝에 '상호 임대 방식'에 합의했다. 대신 일본은 옛 영주의 갑옷 한 벌을 보냈다. 계약은 2년마다 자동 연장되도록 해 사실상 영구임대다.

정부가 일본 궁내청에 보관된 조선왕조 문서 반환 요청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이다. 조선총독부의 기증 형식으로 빼앗아간 조선왕실의궤와 한말 의학 · 관습 등을 소개한 왕실도서,국왕의 교양학습에 쓰였던 경연(經筵)서적 등이 대상이라 한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국제법상 문화재 인도가 끝났다는 입장을 보인다는 점이다. 1965년 한 · 일협정에 따라 일본이 국 · 공유 문화재 1400여점을 반환하면서 '일본이 약탈한 것이 아니며 문화재 반환의 법적 근거가 의심스럽지만 한국 독립에 대한 선물로서 일부를 증여한다'는 단서를 붙인 것도 부담이다.

약탈 밀매 등을 통해 해외 반출된 우리 문화재는 7만6000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 환수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얼마나 끈질기게,그리고 전략적으로 협상에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아이슬란드 고문서 반환에도 50년이 넘게 걸렸다. 개인 소장품은 그렇다 해도 일본 궁내청 조선왕실문서와 프랑스에 있는 외규장각도서부터 우선 환수해 물꼬를 터야 할 일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