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지배구조 개선작업에 나선 은행들이 인물난을 호소하고 있다. 은행 사외이사의 선임 요건이 까다로워진 데다 최근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러나 은행 사외이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은행과 금융지주사들은 지난달 26일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사외이사 모범규준'에 따라 사외이사 교체 작업을 벌이고 있다. 모범규준은 사외이사의 자격 요건을 금융 경제 경영 법률 회계 언론 등의 전문가로 구체화하고 대주주나 비계열 금융회사의 사외이사는 은행 사외이사가 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높이고 사외이사와 경영진의 유착을 막겠다는 것이 모범규준의 취지이지만 은행들은 자격 요건이 너무 엄격해 마땅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적절한 인물을 찾더라도 당사자들이 사외이사 직을 사양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모범규준에 따르면 은행 사외이사는 스톡옵션과 성과급 등 보수는 축소되는 반면 활동내역과 활동시간 등을 공시하고 직원과 이사회 평가를 받아야 하는 등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최근 KB금융의 일부 사외이사들이 사퇴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점도 은행들이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유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사외이사 모범규준을 지키려다 보니 능력 있는 인물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기가 오히려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 사외이사들 중에서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인사들도 많은데 이들의 활동을 평가해 공개하라는 것도 은행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사외이사 제도를 비롯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과제라는 것이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이장영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우리나라의 금융 규제를 미국 영국 일본 등과 비교하면 영업 및 자산운용 규제는 강한 편이고 임원 적격성 등 지배구조 관련 규제는 느슨한 편"이라고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