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3시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있는 의류임가공업체 케이원텍.토요일 퇴근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직원들은 미싱을 돌리고,박음질을 끝낸 옷들의 마무리작업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3000㎡ 규모 공장 곳곳에는 설 이전까지 주문납기를 맞춰줘야 할 의류용 원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강철영 대표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으로 납기를 맞추기 위해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용 의류를 임가공하는 이 회사의 한 달 평균 주문량은 8만여벌 수준.이 정도 의류를 만들려면 통상 80~100명의 인력이 필요하지만,이 회사의 직원 수는 외국인 근로자 6명을 포함해 30여명에 불과하다.

강 대표는 "내국인들은 일이 힘들다는 이유 등으로 우리 회사를 거들떠도 안 본다"며 "외국인 근로자를 추가 신청했지만 지난 5개월째 한 명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지난 4분기부터 경기가 풀리면서 중국 일본 등 바이어들의 주문량이 늘고 있지만 강 대표는 걱정이 태산이다. 앞으로 거래관계를 생각하면 주문을 퇴짜놓을 수도 없고,부족한 인력으로 납기를 맞추자니 외주와 야근 특근 등으로 인건비가 치솟아 영업수지를 도저히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400만 실업시대를 맞고 있다지만 이른바 '3D'형 중소제조업체들의 인력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가 '청년 · 중소기업 인력 미스매치해소 대책'을 다각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중소기업 생산현장의 인력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청년층 등 내국인의 기피 1순위로 꼽히는 염색 · 피혁,봉제,금형 등 중소제조업체들은 지난해 외국인 쿼터 축소 등으로 신규 인력공급이 급감한 데다 기존 인력마저 대거 이탈하고 있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염색 피혁업체인 P사 대표는 "우리 같은 중소업체들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 외국인 공급이 사실상 끊기면서 이들의 눈높이와 몸값만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에 있는 거울제조업체 D사의 경우 최근 외국인 근로자 10명 중 계약이 끝난 5명이 한꺼번에 그만둬 공장가동률을 종전의 절반수준으로 낮추었다. 이 회사 김 모 사장은 "지난해 월급이 적다며 공공연히 불만을 표시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붙들기 위해 필요 없는 야근까지 하며 수당을 챙겨줬는데,올 들어 실제 작업량이 늘자 근로조건이 더 좋은 업체로 옮겨갔다"며 허탈해했다. 야근과 특근수당을 합쳐 이들의 월 평균 급여는 135만~150만원 수준이었다. 김 사장은 "이 정도 월급이면 내국인도 쓸 수 있겠다 싶어 구인공고를 내봤지만 문의조차 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자 중소제조업체들은 외국인 근로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섬유업체 A는 지난해 말 법인을 4개로 쪼개 구청에 사업신고서를 냈다.

내국인 고용인(피보험인 기준)에 비례하는 외국인 고용허용수를 늘리기 위한 편법이다. 내국인 고용이 힘드니 회사라도 쪼개 외국인고용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지난해 외국인 쿼터 축소로 외국인 근로자를 추가로 고용하는 데 실패했지만,올 3월 이후 신규 쿼터가 결정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 회사 최모 사장은 "중소기업의 고질적인 인력난을 일부라도 해소하려면 올해부터 외국인 쿼터를 예전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이어 "별 차이가 없는 제조업체와 서비스업종 간 외국인 고용허용인원을 제조업체 위주로 조정하고 외국인의 잦은 이직을 막기 위해 계약기간도 현재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