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축구를 좋아한다. 중국 프로리그뿐 아니라 늦은 밤에 CCTV를 통해 중계되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등 외국 프로팀의 경기도 즐겨 본다. 하지만 지난 주말 중국 국민들은 도쿄에서 열린 중국 국가대표와 일본 국가대표 간 동아시안게임 경기를 보지 못했다. 당초 중계 예고와는 달리 CCTV에서는 유럽팀 간의 경기가 그 시간에 방송됐다. CCTV 측은 왜 중계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지금 중국 축구계는 도박과 뇌물상납의 추문으로 발칵 뒤집혀 있다. 축구계의 고위관리 100여명이 조사를 받고 있고,선수들은 도박꾼과 짜고 승부조작에 조직적으로 가담했다는 의혹을 사면서 거의 초토화되고 있다.

아마도 중 · 일전 같은 빅 이벤트를 중계하지 않은 것은 중국 정부가 '깨끗하지 못한 축구'를 국민들로부터 떼어놓을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를 내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승부의 세계는 깨끗해야 한다. 부정과 부패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국민들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베이징에서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천씨(46)는 "축구가 인기가 높기 때문에 부패척결의 대상으로 지목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지만 다른 곳을 건드리는 것보다 축구계를 정화한다면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부정 · 부패를 단절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축구가 시범 케이스로 된통 걸렸다는 뜻이다.

9일자 중국 관영 차이나 데일리는 국민의 90%가 신흥 부자들이 정부나 고위 공무원과의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돈을 벌었다고 믿고 있으며,이 중 40%가량은 신흥 부자들에 대해 부패로 부를 축적했다는 나쁜 감정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패에 대한 중국 국민들의 염증은 이처럼 심하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고 해서 중국 정부가 부정 · 부패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일 것이다. 오염된 물을 퍼낸다고 해서 강이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