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도하는 도요타 리콜(결함시정) 사태의 본질은 본보기를 보여 상대방을 제압하겠다는 의도다."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대규모 리콜 사태와 관련, '한국 자동차 업계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김 모 전 회장은 이 같이 분석했다.

김 전 회장은 9일 차길진 후암미래연구소 회장과의 대담에서 "이번 리콜 사태는 도요타 한 회사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모든 무역 상대국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김 전 회장은 도요타 리콜 사태를 '살계급후간(殺鷄給猴看)'이라는 중국 속담에 비유했다. '닭을 죽여 원숭이를 잡는다'로 직역되는 이 속담은 시끄러운 나무 위의 원숭이를 겁에 질리게 하기 위해 산 닭의 목을 비틀어 바닥에 내동댕이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본보기를 보여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얘기다.

김 전 회장은 "사람이 만든 기계는 완전할 수 없고 반드시 결함이 있기 마련"이라면서 "때문에 자동차업체는 항상 리콜을 해왔고, 이는 오히려 신뢰의 상징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요타가 그동안 수천 건이 넘는 리콜을 진행해 왔음에도 최근 들어서야 미 당국이 문제로 삼고 나선 것과 관련, 김 전 회장은 "도요타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 '빅3'와 공존하지 못하고 이를 삼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의 '도요타 때리기'가 '끝장을 볼 때 까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김 전 회장은 내다봤다. 그는 "미국이 도요타를 완전히 죽이겠다는 생각은 아니기 때문에 조만간 타협에 이르게 될 것"이라며 "대신 도요타를 희생양으로 더 많은 강력한 경쟁 무역국들에게 경고하는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한경닷컴에 이날 대담 내용을 공개한 차길진 회장은 "도요타의 이번 사태는 미국의 GM을 누르고 세계 자동차 1위 업계로 등극했던 게 화근"이라며 김 전 회장의 주장을 거들었다.

차 회장은 "미국에서는 '미국은 곧 GM'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도요타가 이를 건드렸다"면서 "이번 사태는 ’업계 왕좌‘를 둘러싼 신경전이자, 나아가서는 미국의 일본 정권 길들이기"라고 분석했다.

이는 5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일본 민주당이 최근 미국과의 동맹관계에서 '불협화음'을 자아내고 있어 미국이 도요타 사태를 빌미로 압력 행사에 나선 것이라는 얘기다.

차 회장은 "미국의 의도를 파악한 일본이 이번 사태를 '기업의 문제'로 포장하고 있지만, 갈 수록 거세지는 압력을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 지 주목된다"며 "이번 사태는 '자동차 전쟁'을 넘어 '제2의 태평양 전쟁'으로 비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도요타 사태로 '반사 이익'을 누린다는 평가를 받는 현대자동차 등 한국 자동차업체들과 관련, 차 회장은 "한국 자동차도 다음 타깃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만족할 일도, 남의 집 불구경할 때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