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과 왕자루이 부장의 면담이 평양이 아닌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이뤄진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북측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의 '구두 친서'를 갖고온 특사를 지방으로 오라고 한 것 자체가 외교관례를 벗어난 것일 수 있다.

왕 부장이 방북할 당시 김 위원장은 함흥시의 비날론연합기업소를 현지 지도하는 등 함흥에 체류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데다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감안할 경우 왕 부장이 평양을 떠나 지방에 가더라도 '결례'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서로간에 형성된 것으로 대북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와 함께 두 사람의 친분이 아주 돈독하기 때문에 북측이 왕 부장에게 함흥으로 와 달라고 요청할 수 있고 왕 부장도 외교관례에 큰 부담 없이 함흥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중국 측이 김 위원장의 정치 행보를 적극 배려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측은 최대 명절인 김 위원장의 생일(2월16일)을 앞둔 상황에서 화폐개혁 이후 흉흉한 민심을 추스르기 위한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북특사인 린 파스코에 유엔 사무국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9일 북한을 방문했다.

중국을 경유해 방북한 파스코에 특사는 12일까지 3박4일 동안 북한에 머무르며 박의춘 외무상을 비롯한 북측 고위 인사들과 만나 북핵 문제와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위성락 본부장과 면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 측과 모든 이슈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총장의 친서 소지 여부에 대해서는 "기다려 보자"며 즉답을 피했다.

북한 측은 파스코에 특사 일행에게 지난해 북한의 제2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결의한 유엔의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