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독자에게 드리는 설 덕담이 담긴 배우 김소연의 사인지에서 드라마 '아이리스'의 남파 공작원 김선화의 이미지를 읽기는 무척 어렵다. 글씨가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게 장난기 많고 감수성 풍부한 여고생의 모습만 비친다.
"글씨체 때문에 NG가 나기도 했어요. 아이리스에서 '잠시 다녀오겠습니다'란 메모를 남기는 장면이 있는데,글씨체가 김선화의 터프한 이미지와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
어디 글씨체뿐이랴.깔끔한 베이지색 정장 차림의 외모는 세련되고 콧대 높은 전문직 여성 이미지만 풍긴다. 도대체 드라마 속 김선화의 그 굳게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빛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극중 캐릭터에 그만큼 잘 녹아들었다는 얘긴데,그럼 일상 속 김소연의 모습은?
"뭐, 좀 쾌활하고 활동적이며 엉뚱한 면도 있다고들 해요. 집에서는 연예인으로 봐주지도 않고요. "
올해로 꽉 찬 서른.그렇지만 집안에선 늘 귀여우면서도 걱정스러운 평범한 막내딸이다. 설에는 서울 목동 큰댁에 차례를 지내러 가는데 또래 사촌들과 수다를 떨 생각에 벌써부터 들떠 있다. 수다의 주제는 지난 1년간 있었던 일.아이리스 얘기라면 책을 한 권 써도 모자랄 지경이니 올해는 좌중을 휘어잡을 자신이 있다. 또 하나의 수다 주제는 남자.나이가 나이니 만큼 결혼얘기가 빠질 수 없다.
"요즘은 현실적인 얘기를 많이 들어요. 남자는 적어도 사계절은 만나봐야 한다거나,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집안인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등이죠.집안이 좀 보수적이고 엄한 편이거든요. 큰아버지는 절을 할 때 손의 위치까지 지적해 주시기도 해요. "
결혼은 아무래도 늦을 것 같다. "일을 많이 한 뒤.늦게" 하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이리스가 자신의 연기인생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는 생각에서다.
"배우의 길을 갈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이어도 선택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이 세계잖아요. 출중한 배우는 많고,선택될 때까지 웃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힘들었어요. "
그런 그에게 아이리스의 김선화역은 행운이었다. 1년여간의 사전제작 기간 중 TV에 방영되기 전이어서 아무 반응이 있을 리 없는데도 스스로가 즐기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연기가,촬영현장이 내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 흥행에 힘을 보탰고,김선화는 '자체발광'했고….물론 죽을 힘을 다해 연기해왔지만 진정한 연기의 맛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단다.
"정말 배우고 싶어요. 이병헌 김승우 송강호 전도연… 정말 신 같아요. 저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빙의' 돼서 연기할 날이 있을까요. "
차기작은 좀 '밝은 작품'이다. 그는 언제나 직전 작품 캐릭터와 정 반대되는 캐릭터를 찾았다. 여성성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드라마 '식객' 이후엔 형사 같은 강인한 캐릭터를 원했는데 드라마틱하게도 아이리스의 김선화가 될 수 있었다.
"늘 도전하는 거죠.승부욕이 강한 편이거든요. 제게 있는 또다른 나를 모두 드러내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현장에서 맘껏 놀 수 있는 작품,저의 재능을 믿어주고 이끌어주는 감독님이라면 좋겠어요. "
그는 차기작 최종 선택을 앞두고 경기도 양평에 다녀올 생각이다. 양평은 부친의 고향.이태 전 만 해도 할머니가 사시던 곳이다.
"양평이 제 고향 같아요. 어릴 적에는 방학 내내 가 있었어요. 할머니 품속 같이 편안해진다고 할까요. 제 선택을 잘 할 수 있게 도와줄 것만 같아요. 그게 고향인가요. "
참! 마지막 한마디 더! 이번엔 각을 조금 세워서.
'"한국경제" 독자여러분♡ 꼭! 부자되실 거예요♡♡.'
글=김재일 /사진=정동헌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