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되는 '졸업식 노래'는 언제 들어봐도 울림이 있다. 재학생들이 부르는 1절에 졸업생들이 답하는 2절 '잘 있거라,아우들아 정든 교실아/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에 이르면 울먹이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다. 3절은 재학생 · 졸업생이 함께 부른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노래하는 동안 즐거웠던 일들은 물론이고 힘겨웠던 기억까지 아쉬움으로 바뀌며 가슴을 적셨다. 초등학교만큼은 아니더라도 중 · 고등학교 졸업식도 여운이 남기는 마찬가지다.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졸업장을 받아들면 '다시 오지 않을 시기'를 실감하게 된다.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내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그리고 기대가 뒤섞이며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선지 밀가루 뿌리기,얼굴에 먹칠하기 같은 뒤풀이를 했다.

심한 경쟁으로 순수한 감정이 메말라가기 때문인가. 중 · 고등학교 졸업식 뒤풀이가 갈수록 거칠어지는 모양이다. 20여명의 남녀 중학생이 한 여중생의 교복을 강제로 벗기고 머리에 케첩을 뿌리는 동영상이 나돌아 파문을 일으키는 등 도를 넘는 뒤풀이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속옷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는가 하면 졸업식장에 분말소화기와 밧줄도 등장했다. 심지어 고등학생 10여명이 후배 중학생 7명의 교복 스타킹 등을 가위와 면도칼로 찢고 바다에 빠뜨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부 학생들 얘기겠지만 이 정도면 광란에 가깝다.

프랑스에서도 고교 졸업생들이 윗옷을 벗고 거리로 나가지만 공부 때문에 비쩍 마른 몸을 보여준다는 '룰'을 지킨다고 한다. 조선시대 성균관 졸업식에서도 유생들이 임금이 내린 술을 돌려 마시며 우의를 다진 뒤 재학중 입었던 푸른 옷을 찢는 파청금(破靑襟)이란 의식이 있었으나 품격만은 잃지 않았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윈스턴 처칠은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식에서 "포기하지 말라.절대로 포기하지 말라"는 단 두 마디의 인상적인 축사를 했다. 달라이 라마도 미국 에모리대 졸업생들에게 "불굴의 정신으로 진짜 인생을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이렇게 끈기와 도전을 강조한 이유는 졸업 후 맞닥뜨릴 현실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현실을 헤쳐나가도 모자랄 판에 폭력적 뒤풀이로 동료나 후배를 괴롭혀서야 되겠는가.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