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선종 1년] 가르쳐준 '낮춤'…매년 잊지않고 친필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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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사람 처지따라 내용 모두 달라
"언젠가 추기경님께서 명성성당 앞 바오로딸서원(서점)에 불쑥 찾아오셨어요. 서원에서 일하는 수녀들이 몇 명이냐고 물으시더니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아주시면서 격려해 주시더군요. 그리고는 저희들이 사는 공동체까지 들여다보시고,기도하는 곳을 보여달라 하시더니 '종종 여기 와서 기도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셨지요. 그 바쁘신 분이 그토록 자상하게 관심을 기울여 주시는 걸 보고 정말 놀랐어요. "
바오로딸수녀회의 한 수녀는 오는 16일로 선종 1주기를 맞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이렇게 기억했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추기경이 수녀들의 일과 삶에 대해 일일이 관심을 기울여 주는 데 놀랐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김 추기경은 수시로 시간을 내 고아원,양로원,병원,수도원 등을 찾아가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래서 천주교가 운영하는 여러 복지시설이나 수도원 등에는 김 추기경과 함께 해마다 찍은 기념사진이 각기 다른 사연과 함께 보관돼 있다. 기념일이나 행사 때 의례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을 찾아가,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구체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그의 사랑법이자 소통법이었기 때문이다. 생전에 김 추기경을 만났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신과 각별했던 경험을 들려주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김 추기경께선 로마와 유럽 등지에서 유학하고 있던 사제와 신학생들에게 매년 한두 차례씩 친필 카드나 엽서를 보내셨어요. 또 로마에 출장을 갈 때면 서울대교구 소속의 신부 250여명에게 일일이 자필로 엽서를 써 보내셨고요. 그런데 카드나 엽서에는 받는 사람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각기 다른 내용을 적어 보내셨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무처장 안병철 신부(58)는 김 추기경의 폭넓고도 세심한 배려를 이렇게 설명했다. 수많은 사람에게 편지나 엽서를 보내더라도 대동소이한 본문에 수취인 이름만 달리 해서 보내는 게 아니라 "지난번에 만났을 때 두통으로 고생하던데 좀 나아졌느냐" "□□과목 공부가 어렵다더니 잘 되고 있느냐"는 식으로 구체적인 관심을 담아서 보냈다는 것이다. 안 신부의 사제서품식에서도 김 추기경의 이런 면모가 드러났다.
"1981년 프랑스 파리 유학 도중 잠시 귀국해 김 추기경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을 때였어요. 서울 도림동성당에서 두 명이 함께 서품을 받기로 돼 있었는데 서품식 직전에 한 명이 신부의 길을 포기해 혼자 서품을 받게 됐어요. 그런데 김 추기경께서는 서품식 강론에서 '포기하는 것도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라며 그 포기자를 위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셨죠."
김 추기경이 입원 중이던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에서 암 치료를 받았던 이해인 수녀도 최근 한 기고문에서 "김 추기경께서는 병실에서도 잘 모르는 이가 있으면 누구냐,어디서 왔느냐,못 알아봐서 미안하다고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으셨다"고 회고했다. 김 추기경은 스스로 내건 사목표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처럼 그렇게 소통하고 사랑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